지식은 세계의 사실들을 단순하게 인지하는 행위를 넘어서 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인간의 모든 지적 행위를 구조화시키고 정신적 활동에 필요한 자료의 수집과 해석을 지속시켜왔던 과거의 교육 행위는 더 이상 지식의 범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식 정보 사회에서 하나의 정보, 자료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진정한 의미의 지식은 우리의 관심이나 목적과 관련하여, 정보의 의미를 이해하고 평가하여 내면화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은 정보를 전달받은 사람에 의해 습득되고 가공되어 그 사람의 일부가 될 때, 가치를 드러낸다. 즉 내면화의 과정을 거쳐 ‘지식’이란 명칭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형성하고, 행동으로 나타나며, 지속적인 내 것 만들기의 자기 노력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생명력과 생산성을 띤 참 지식이 탄생한다. 이른바 창조적 지식이다.
이런 지식을 장악하고 창조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교육에서 출발한다. 이때 교육의 내용이 문제가 된다. 우리의 대학은 무슨 교육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진정으로 21세기 시대정신을 선도하고 있을까? 아직도 인격 도야와 정보의 습득을 주축으로 하는 전통적 교육을 교육의 전체인 것처럼 여기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대학도 적지 않은 듯하다.
미시간 대학의 명예총장인 제임스 두데스탯(James Duderstadt)은 ‘대학혁명’이란 책을 통해, 미국의 대학 총장으로서 변화하는 시대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나름대로의 고뇌를 털어 놓았다. 고뇌의 결과, ‘학습자 중심’, ‘적정한 비용’, ‘평생학습’, ‘쌍방향 학습’, ‘다양성’, ‘지적인 능력과 적응력’ 등을 모든 고등 교육에 적용해야할 공통 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는 함께 심사숙고하고 논의해야할 행동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첫째, 대학의 핵심적인 역할과 가치를 결정하라. 둘째, 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셋째, 변화와 경쟁에 대비한 대학을 준비하라. 넷째, 대학 운영시스템을 개혁하라. 다섯째, 고등교육의 재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발하라. 여섯째, 실험을 장려하라. 일곱째, 협력관계 형성에 최고의 노력을 집중하라.
우리 한국의 대학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 대학은 나름대로 시대변화에 발맞추어 국제화, 정보화 등 특성화를 통해 질적 성장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를 선도하기보다는 시대에 적응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대학은 그 존재의 역사성과 전통성에 비추어 볼 때, 핵심적인 역할과 가치를 분명하게 지녀야 한다.
변화하는 시대에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핵심적인 역할과 가치는 무엇일까? 청년 교육인가? 기초연구인가? 사회비판인가? 학문의 자유, 합리적인 연구 정신, 수월성의 추구 등등. 어떤 것이 대학이 지녀야할 시대적 요청일까? 분명한 것은 대학이 고등 지식을 확보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가지만 짚어 보자. 전통적으로 대학은 지식을 창조하고 보존하며 통합하고 전달하고 응용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지식 전달 교육은 주로 강의실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은 네트워크 시대이다. 강의실에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던 교수보다는 함께 참여하고 상호 작용하는 교육이 요구된다. 다시 말하면, 강의하는 교육자보다는 학습을 디자인하여 학생과 함께하며 학생의 능동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 과정을 관리하는 차원의 교육이 더욱 요구된다. 왜냐하면 지식 창출은 교육자에 의해 제시하는 존재의 분석에 있기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자기 창조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대학은 아직도 강의실 패러다임에 익숙하다. 언제쯤 네트워크 패러다임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우리의 대학도 진정으로 ‘지식’, ‘학습사회(learning society)’라는 시대정신을 읽고, 대학의 핵심적인 역할과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교수와 학생, 대학의 구성원 모두가 시대정신을 리드할 수 있는 지식 창출자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