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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호철] "지식인은 분단현실 위에서 민족의 갈 길 고민해야"
우리는 어디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떻게 가야 하는가
<<‘여름의 초입을 달구었던 월드컵 4강이라는 국민적 환희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아직도 당시의 감격을 되뇌이는 사람들도 있으며 경제 등의 분야에서는 이 에너지를 활용해 상승효과를 얻으려 하고 있다.

치열하면서도 준엄한 작가의 삶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해 온 원로 소설가 이호철은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줄곧 외쳐온 민족과 통일문제로 사회를 바라볼 것을 지식인 집단에 강조한다.

우리 민족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노 작가와 역시 학자적 양심으로 치열한 현대사를 살아온 본지 김우종 주필의 만남에서 찾아본다.>>

김우종 : 오래간만입니다. 여전히 건강하신데 지난해에 칠순이 되셨지요? 이 선생이 이렇게 말한 것을 봤습니다. “내 소설의 총량은 탈향에서 귀향에 이르는 도정으로 압축될 수 있다”고. 이 선생의 그 도정(道程) 속에는 행동하는 작가로서의 민주화 운동과 통일을 향한 발걸음과 수차례의 감옥살이가 있지요.

남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너무도 치열하게 준엄한 작가의 삶을 살아낸 셈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보다 먼저 기운이 쇠진하기 쉬운데 여전히 젊고 또 여전히 현역 작가로서 소설쓰기를 계속하고 있으니 놀랍습니다.

이렇게 살아오신 분이기에 오늘은 문학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민족적 현실문제 등에 대한 선생의 폭넓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민족은 어디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그 길은 어떻게 가야하는지” 다시 말해서 우리의 현재의 좌표와 미래의 좌표, 그리고 그 방향을 위한 방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호철 : 나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내 작품을 통해서 항상 그 문제를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의 삶의 총체였다고 말할 수도 있지요. 나는 “한 작가가 써내는 작품의 총량은 궁극적으로는 그 작가가 살아 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내게 있어서는 분단현실이라는 좌표 속에서 통일 조국이라는 미래의 좌표를 설정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었고 그 방법이 ‘한솥밥론’이었지요.

사실 우리나라 자체가 분단국가지만 나는 고향을 잃고 가족마저 분단된 실향민 작가니까 더 절실하게 분단현실이 내가 문학을 통해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였고, 삶 자체가 그 길을 향한 발걸음일 수밖에 없었지요.

김우종 : 그래서 그렇게 좌표를 설정하고 방향을 설정하고 방법을 모색하며 살아온 70평생이 지난 해에 발간된 문집 ‘우리는 어디 서 있는가’였군요?

이호철 : 네, 그렇습니다. 작년에 칠순 기념으로 국학자료원에서 장편 중단편 등을 5권으로 묶고, 또 나의 문학에 관한 연구논문과 평론 등을 2권으로 묶어서 7권을 낼 때 이와는 별도로 ‘우리는 어디 서 있는가’라는 문집도 냈지요. 주로 통일 관련 글 모음인데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 민족의 갈 길을 생각하며 여기저기 발표해 나갔던 것입니다.

김우종 :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 좌표는 어디이며 우리의 갈 길은 어디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통일론부터 시작해야겠군요?

이호철 : 물론 그렇습니다.

김우종 : 그렇지만 우선은 이 선생께서 보시는 이 나라의 대학교육에 대한 소감부터 조금 듣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이 선생이 대학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보시는 바는 어떤가요?

이호철 : ‘대학’ 하면 역시 입시풍토부터 생각납니다. 문학 작품 하나 읽지 못하고 독서를 따돌리며 들어가야 하는 대학. 그러면서도 대학은 꼭 가야만 하고, 더구나 일류대로만 가야 츌세한다는 이 땅의 학벌주의는 큰 문제가 아닐까요?

김우종 : 이 선생은 대학을 안 나왔지요?

이호철 : 18세이던 원산중학때 6·25로 인민군에 입대하고 단신 월남한 실향민이 되어 겨우 살아남으며 작가로 등단했으니 대학에는 못 갔지요. 학사증은 있지만 내 딸이 숙명여대 출신인 걸 알고 그 대학에서 명에 학사학위를 준 것 뿐입니다.

김우종 : 그런데 그것이 작가생활에 지장이 있었습니까?

이호철 : 전혀 없었어요. 또 필요한 지식을 얻는 방법도 다양한 것이며, 작가는 학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작품에 의해서 평가 받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누구나 학벌 때문에 아등바등하는 것은 심히 잘못된 것이라고 봐요.

나는 강연 다니면서 젊은이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대학에 떨어졌다고 너무 아등바등하지 말라”고. 그리고 4년간 대학 다니는 것만이 길이 아니라 그 돈으로 4년 동안 혼자서 배낭 하나 메고 네팔 같은 나라에 가서 노동도 해 보고 온갖 견문도 넓히는 것이 여기서 대학 4년 다니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인생 전체를 종합해 결산을 내린다면 그럴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많은 학문적 지식을 쌓고 연구해 나가는 대학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누구나 모두 예외 없이 대학졸업장만 따려고 하는 학벌주의가 만사 해결의 수단이고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의 지식인들도 학문도 중요하지만 좀 더 큰 틀 속에서 우리 민족의 현실도 생각하는 지식인이 되어야겠지요.

김우종 : 이 선생이 말하는 ‘큰 틀’이란 지금까지 이 선생이 치열한 삶을 통해서 추구해 온 것을 보면 결국은 우리민족의 분단이라는 역사적 현실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이호철 : 그렇지요. 우리 민족이 어디 서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 좌표는 분단 현실입니다.

김우종 : 동감입니다. 월드컵 4강이라고 자신감도 얻고 온 국민이 모두 행복감에 젖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 순간에도 서해 교전을 벌이고 우리를 갈라놓은 강대국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의 분단 상황을 바라보며 즐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선생이 이번에 보신 월드컵에 대해서는 남다른 감회가 있었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이호철 : 예, 좀 섭섭한 것이 있습니다. 이번에 월드컵이 딱 끝나니까 정부는 이 열기와 자신감을 경제 쪽으로만 밀고 나가며 상승효과를 얻으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한편에서는 중남미 쪽으로의 축구 유학 붐까지 일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런 열기를 좀더 시야를 넓혀서 남북관계 쪽을 바라보며 통일국가를 향한 큰 미래로 이 에너지를 활용할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경제, 경제’ 하며 더 잘 살자는 얘기만 나오는데 북쪽도 바라봐야죠.

내가 북한에 들어가 보니까 우리가 너무 잘 사는 것 같아요. 거기엔 우리의 재래적인 조선 사람들의 품격도 남아 있는 듯 했습니다. 못 살더라도 이웃간의 정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민간인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은 안되지만. 호텔의 아줌마들 힐끗 봤는데 나의 문학적 감각으로 그닥 알겠더라고요. 그곳 민중의 삶의 수준이 어떤 것인지.

화장실의 낡은 타월을 봐도 그래요. 우리나라 같으면 마루 걸레로도 잘 쓰지 않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일단 그 쪽에 가보니까 우리는 다들 잘 살아요. 너무 잘 살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들 엄살떨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거울삼아 보면 우리가 좀 줄여 사는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곳 사람들은 너무 짓눌려 있어요. 이와 달리 남쪽에서 온 사람들은 대번에 드러나요. 배 나오고 훤하고 활달하고…. 이런 것을 서로 바라보며 거울로 삼아서 우리 자신이 그동안 너무 허황방탕하게 ‘더 잘 살자, 더 잘 살자’ 해온 것과 달리 좀 줄여가며 살 수 있는 것도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월드컵을 보면서 느낀 섭섭함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의 대학가도 그렇게 변했지만 월드컵에 대한 관심과 반비례로 정치적 현실에 대한 무관심은 더욱 확연히 드러났지요. 투표참가율이 낮아졌으니까요.

그렇지만 매우 중요한 변화가 있어요. 그것은 우리의 ‘대한민국’이 ‘대애한민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박자 맞추기 위해서 ‘애’자 하나 더 들어간 것이지요. 그런데 과거의 ‘대한민국’은 상해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이승만의 대한민국, 박정희의 대한민국, 전두환 시대의 대한민국, 그것이 모두 다른 ‘대한민국’이지요. 극장에서 애국가와 함께 꼿꼿이 기립해야 했던 구질구질하고 억눌린 대한민국도 그렇고. 그런데 이번 대한민국은 여기서 벗어난 ‘대한민국’ 이거든요. 그러니까 연변 사람도 일본 사람도, 세계의 다른 외국인도 이를 바라보며 함께 눈물도 흘린 그것은, 지금까지의 이북과 대치된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 모두 삼천리강산 얼씨구 하는 대한민국이지요. 그렇다면 이를 활용해서 남북관계의 발전적 계기를 다시 설정해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김우종 : 매우 중요한 변화를 지적했는데, 그렇다면 그같은 발전적인 계기 설정은 누가 할까요? 이번 ‘대애한민국’의 열기는 순수한 자생적 집단행위였습니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남북관계의 발전적 계기로 한 단계 넘어가는 것도 자생적으로 가능할까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떤 리더들의 지도적 역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호철 : 조직화되고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서 복종하고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김우종 : 내가 말하는 지도적 역할은 이 선생 같은 지식인 또는 대학의 지식인의 역할입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누구에게도 명령을 하지 않지만 명령보다 더 효율적으로 민중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대학의 지식인 집단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이호철 : 그렇지요. 그래서 정치권에서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당혹한 것이지요. 저게 뭐냐 하며 두려워할밖에. 전체를 움직여 나가는 대표자가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데 그래도 한번 방향이 바뀌면 그것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이고 그냥 바라만 보다가는 그동안 자기들 정치권 다 망하니까.

물론 이번에 젊은이들이 뭘 뒤집어엎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나는 이걸 보면서 ‘인류 역사의 변화를 향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바로 여기서 나오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 명령하고 지시해 나가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서 집단이 형성되고 역사가 만들어 지는 것 말입니다.

통일도 그렇지만 모든 것을 너무 개념화하고 좌우로 나누고, 정의와 비정의를 양분화하지 말고 기존의 발상법을 깨야돼요. 통일 주장하면서 과거의 독립투사처럼 폼 재고, 어쩌다 친북성향으로 찍히고, 그래서 차라리 통일 말만 나오면 다칠까봐 피하며 통일이란 말을 너무 무겁게 어렵게 만든 게 잘못입니다. 그냥 서로 오고 가며 만나서 한솥밥 먹어 보면 한 식구 되고, 그런 게 통일의 길 아닙니까?

우리 민족이 어디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저는 여기서 찾습니다. 대학에서도 너무 사회과학이론으로 어렵게만 풀어나가지 말고, 또는 ‘살아서도 통일, 죽어서도 통일’하며 살벌하게 만들지 말고, 쉽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누구나 그 길에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우종 : 이 선생의 말씀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좌표 및 방향 설정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2-08-09 오후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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