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그는 남들이 전선에서 싸우다 죽어주는 대가로 저만 살려고 잔꾀를 부리는 비열한 병역기피자는 아니었다. 총 들고 나가서 싸운다는 것자체가 결과적으로는 침략자들의 살인행위에 동참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결국은 우리 민족의 해방에도 방해가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증언으로 보더라도 그가 집총을 거부한 것은‘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쓴 시에서처럼 온 인류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려는 평화주의자로서의 길을 대학생으로서 분명히 하고 그 길을 가다가 옥사한 것이다.
그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그 공포의 계절에 악명 높았던 그 일본 군사교관(육군대좌)에게 당당히 군사교련 거부의사를 밝혔다면 그것자체가 자기만 살겠다는 잔꾀가 아니라 오히려 온갖 수난과 함께 죽음의 길까지도 각오한 용감한 행위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요즘도 한창 벌어지고 있는 그 병역문제는 전연 다르다. 그야말로 남들이 죽어주는 덕분에 저만 잘 살겠다고 해온 자들에 대한 사실의 진실성 여부를 따지는 싸움이며 또 그것에 사활을 건 사람들의 패싸움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문제를 방관만 할 수는 없다. 왜냐면 이런 병역문제는 대학의 남학생들이라면 누구도 초연해 질 수 없는 중요한 현실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병역기피문제는 특권을 누려온 일부 계층에 대한 분노를 자아내고 때로는 정직한 젊은이들에게 좌절감을 주며 그들까지 타락시키고 국가에 대한 봉사정신을 오히려 조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잘 사는 상류층일수록 학부 마친 후 유학하며 징집을 연기하다가 귀국하지 않거나 신체적 조건 등으로 병역 면제자가 되고 있는 사례가 너무 많은것을 보면 어느누가 총대메고 죽으러 나가려할 것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나라가 시키는 일 다 마치고 돌아오면 그들은 편법으로 편히 지낸 자들보다 항상 경쟁 대열에서 뒤떨어진다. 복학하고 보면 그 사이에 입학했던 후배가 먼저 졸업하고 나가 버리고 사회에서 선배 노릇을 하는 일도 허다하다. 후배가 이미 조교가 되어서 교수를 대신해서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는 일까지 있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벌써 앞서 가는 직장 선배가 되어서 계급도 높아진다. 비좁은 자리는 이미 후배가 자리를 차지해서 들어갈 자리도 없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우리 나라 현실이다. 선진국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없는 더러운 꼴이 벌어지며 우리는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정치판과는 상관없이 우리 대학사회가 더 관심을 갖고 대학생들이 누구나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