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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식 칼럼
손광식 칼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경향신문 경제부장, 편집국장, 주필 
문화일보 주필, 전무이사  / 문화일보 대표이사 사장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현재) 상지컨경영설팅(주) 회장,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고문

* 주요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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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관료(공저), 1979  / 거탑의 내막(공저), 1983 /  한국의 이너서클, 2002 

[손광식 칼럼] 상지경영 컨설팅 회장
이라크 전쟁에 대하여
손광식 / 언론인
수백만의 반전 시위대는 있어도 반전 연합군은 없다. 따라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다. 이것이 지금 중동의 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둘러싼 국면 전환의 한계다.

반전(反戰)은 강한 물결을 이루고 있지만 반전(反轉)은 없다. 결사항복과 결사항전이라는 양 진영의 대결의지 때문만이 아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 전쟁은 현대사가 빚은 산물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수단이 발동되긴 했지만 피할 수 없는 역사적 귀결이다.

냉전시대가 붕괴되고 미국이라는 일국주의 체제의 등장을 들 수 있다. 평화와 질서는 이 초강국의 책무가 아닌 의지로 되어버렸다. 흔히 평화와 질서는 같은 반열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두 개념에는 갈등적 요소가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자유와 평화 속에는 질서 파괴적인 요소가 있다.

반대로 질서 속에는 강제와 강압 수단이라는 반 자유, 반 평화의 요소가 숨어 있다. 미국은 세계 질서가 유지되지 않으면 현대판 로마제국의 천년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러니 최고 폭력의 방식인 전쟁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의 집정관' 부시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다.

그리고 이 초강대국은 보상받을 길도 없는 상처(9·11테러)를 입었다. 아프간에서 복수의 대상물들을 제거했지만 화려한 개선을 하기엔 부족했다. 내친김에 칼은 한 '악의 축'을 향했다. 뒷골목의 보스도 힘이 넘치면 조직의 질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차례로 급수가 높은 강자를 때려눕힌다.

아프간 진압만으로는 우방이든 적대국이든 '미국의 코드'에 맞추게 하는 강압 수단이 될 수가 없다. 동남아 여러 나라를 휩쓴 IMF 사태에서 이라크 전쟁까지 지난 5년 동안을 추적해 보면 연결 고리를 짚어 볼 수가 있다.

전쟁의 도입부에 나타난 인물은 테러리스트 빈 라덴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젯타대학을 나왔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민이다. 그런데 반미 테러의 심장부를 아프가니스탄에 설치했다. 종교적 형제국이자 회교원리주의 형제의 나라에서 종교적 이념을 공유하며 테러리스트들을 키웠다.

그의 적은 왕정 독재체제가 아니라 시오니즘과 그 배후 세력인 미국이었다. 민주화 투쟁보다는 종교 투쟁이 압도적 가치를 지니는 이슬람 세계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 쪽에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나는 25년전 이란과 이라크의 접경지역 한국 공사장에서 싸키네라는 여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일부다처 등 전 근대적 사회체제와 종교적 이유로 억압되고 있는 자유에 대해 그녀는 말했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면서 봉건적 지배 체제와 계율이 이 세계에 아직도 완강하고 철저하게 지배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외부 세계에 대한 아랍의 시오니즘 공격은 민중의 민주화 압력을 대외적으로 해소시키는 분출구로 되고 있다는 근거다. 그 압력이 세계화와 인터넷에 의해 서서히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는 시점에 전쟁이 터졌다. 미국과 이라크가 맞붙었지만 그 배후에는 아랍세계가 걸려있다.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이 세계의 정치적 지각 변동이 닥칠 수밖에 없는 시간과 조건과 환경에 도달한 탓이다. 다만 개발 독재의 근대화를 이끌고 있는 사담 후세인이 표적이 된 것은 아이러니다. 전쟁의 표면은 대량 살상 무기가 도화선이 되고 석유 이권이 걸려있지만 이른바 세계화로 아랍세계가 편입되느냐 여부가 결정나는 역사적 이벤트의 성격이 있다.

이번 전쟁은 예상보다 오래 끌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승패를 가름하는 전투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는 '전쟁 현상'이 오래 갈 것이란 생각이다. 전쟁복구와 국제질서의 재정립도 그러하려니와 이 이벤트를 축으로 하여 세계의 역사는 새로운 기록들을 해 나갈 것이다. 그 결과가 좋을 것인가 나쁠 것인가는 아무도 아직 모른다.

손광식 칼럼 | 입력 : 03-04-04 오후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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