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3명의 성노예 피해 여성과 7명의 근로정신대 피해 여성이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에 2차대전 중 일본정부에 의해 자행된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 및 피해보상을 청구하면서 이 재판은 시작되었다.
당시의 재판부는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해서는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성노예 피해자인 3명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일본정부가 원고들에게 각각 30만엔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판결은 일본의 사법부가 전후 최초로 과거 일본정부의 식민지배 및 전쟁범죄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일본정부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 뒤집어졌고, 그것이 이번 최고재판소의 판결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판결의 결과는 자명한 것이다. 즉 과거 일본정부가 자행했던 전쟁범죄에 대하여, 현재의 일본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2차대전중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제기한 일련의 소송을 접할 때마다, 전쟁범죄 및 전후배상의 문제는 이미 한국과 일본의 정부간 협약을 통해서 해소된 사안이라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1965년에 이루어진 굴욕적인 한일협정의 체결이었음은 물론인데, 이 협정의 성격이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적 단죄의 성격이 아니었음은 차치하고라도, 당시의 협정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도 못했다는 점은 다시 한번 환기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재판의 결과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교훈은 역사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과거는 언제나 현재 속에서 지독한 악몽의 형태로 재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최근 일본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광범위한 우경화 경향과 관련하여 이 점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수년 사이 일본 사회에서는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새로운 형태의 일본적 네셔널리즘을 강화하려는 집단적 시도가 지속적으로 전개돼 왔다. 전후에 제정된 일본의 ‘평화헌법’이 주권국가로서의 일본의 국권을 제한하고 있으니, 이를 개정하자는 우익들의 과격하고 위험한 주장들이 최근에 와서 힘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학계 일각에서는 이른바 ‘새로운 역사 교과서’ 파문이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근대 일본의 식민지배가 아시아 제국에 끼친 막대한 피해와 상처에 대해 참회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역사관은 일종의 ‘자학사관’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역사관’은 결국 과거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은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 즉 일제의 침략을 통해 아시아의 근대화가 가능해졌다는 기묘한 논리의 곡예를 정당화하고 있다.
최근 일본사회에서 거의 병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는 ‘조선(북한)인 혐오증’도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의 회담 이후 불거져 나온 일본인 납치사건의 문제가 전 일본열도에 조선인 혐오증으로 확대되어, 조총련계 학생들에 대한 테러와 인권침해가 갈수록 심각해져가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러한 사태를 일본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앞장서서 부추기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북한위협론’을 들먹이면서, 일본의 재무장 및 아시아에서의 지배력의 확대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일본의 도쿄도지사는 북한을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막가파식’ 발언까지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는 터이다.
역사청산이라는 말이 종종 들린다. 그러나 역사는 청산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오래 지속된다는 말이 있지만, 반성 없는 기억은 왜곡일 뿐이다. 그 왜곡된 과거의 기억은 자주 현재의 악몽으로 되살아난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