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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혁 칼럼] 평양과 워싱턴의 동상이몽
서보혁 /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정치학 박사
이라크전이 시작됐을 때 대부분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부시정부가 북핵문제도 군사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당시 필자는 북핵문제가 이라크사태와 객관적으로 다르고, 전후 이라크내 친미정권 수립과 중동질서 재편에 걸리는 시간, 가장 중요하게는 북핵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경우 미국의 비용-편익 계산에서 비용이 크다는 점을 들어 외교적 접근을 전망한 바 있다.

다행히도 북한이 기존의 북-미간 쌍무회담을 접고 다자회담을 수용하기로 해 외교적 해결의 길이 열렸다. 그러면 부시정부는 왜 북핵문제를 군사적으로 혹은 일방주의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다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추구하는가?

부시정부가 북핵문제를 이라크문제와 다르다고 하는 공식적 입장은 북한이 냉전 붕괴 이후 외국을 침략하거나 테러지원 활동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는 이 두가지 점에서 북한과 다르다.

그러나 그 이면에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에 정치외교적, 전략적 부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핵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 할 경우 한반도는 물론 일본까지 전화에 휩싸여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전쟁이 아니라 외교적 갈등 국면이 조성되더라도 북한은 실제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주한, 주일미군 그리고 일본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핵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미국은 북핵문제에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입장을 무시하거나 중국과의 갈등을 불사하면서까지 군사적 해결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에 북경에서 열리는 3자회담은 중국의 적극적 역할로 가능했으며 이 과정에서 워싱턴과 베이징은 한반도 비핵화에 완전한 의견 접근을 보았다.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접근은 핵확산 방지에 대해 핵 보유국으로서 미-중 양국의 공조와 한국, 일본과의 동맹관계 유지라는 전략적 계산의 결과 나온 것이다.

다른 한편 미국은 북핵문제가 북-미 양국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주변국들의 우려 사안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자회담을 고집하고 있다. 부시정부의 이런 입장은 첫째, 북한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한 체제의 안전보장 요구를 절대로 수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가 반영돼 있다.

이점은 역으로 북한이 제한적이나마 3자회담을 수용한 배경이기도 하다. 둘째, 미국은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할 경우 대북 지원을 과감하게 한다고 밝혀왔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을 주변 국가들과 함께 분담할 필요가 있다. 3자회담 발표 직후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이 2002년 6월 6일 밝힌 대북정책 요강을 상기시킨 바 있다.

이것은 작년 말-올해 초 소위 ‘과감한 접근(bold approach)'으로 다시 표명된 바 있다. 즉,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검증한 가능한 수준에서 영구히 해체한다면 미국은 북한에 대규모 식량지원, 국제경제기구의 차관 도입 제의 등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현재 미국은 이라크전을 국제사회와 유엔의 지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전개함으로써 전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할 입장이다. 미국이 이라크전으로 사용될 비용은 약 750억 달러로 알려지고 있다. 또 미국은 1994년 북한의 핵동결 대신 두 기의 경수로를 건설할 비용 대부분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 한국, 일본에 부담시킨 바 있다.

당시 미국이 북한에 제공하기로 된 매년 50만 톤의 중유와 경수로 관련 예산은 한국, 일본에 비하면 미미한 규모였지만 공화당은 클린턴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강력히 견제하였다. 그런 공화당정권인 부시정부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의 포기 대가를 모두 부담하려 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면 북한이 다자회담을 수용한 배경은 무엇인가? 북한이 양자회담을 거부하는 부시정부의 강경 입장과 대립을 지속할 경우 손해를 보는 것은 북한쪽이다. 현재 북한의 식량난은 최악의 상태이고, 이라크전을 지켜본 북한 지도부는 양국간 외교적 대립이 미국에 군사 행동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과거 4자회담에서 보듯이 다자회담 틀 내에서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다자회담에서 북한이 자신의 요구인 미국으로부터의 구속력 있는 안전보장 조치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회담 틀을 넘나들거나 협상력 강화 차원에서 벼랑끝전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

부시정부의 말처럼 베이징 3자회담은 ‘예비회담’이고 향후 과정이 지루하게 전개될 공산도 있다. 결국 다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의 외교적 접근의 실효는 한국, 일본의 참여에 대한 북한의 태도와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물론 한국정부의 적극적 자세도 중요한데 거기에는 북한과 미국이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도록 하는 것과 이 회담을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의 기반으로 다지는 작업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3-04-28 오전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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