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여 세칭 몇몇 ‘명문대학’을 위주로 준신분화 되고 있는 ‘학벌주의’는 능력주의와 업적주의에 기인한 순기능보다도 명목주의와 형식주의에 기인한 역기능을 우리 대학과 사회에 파급시키고 있다. 이로 인하여 대학은 고학력과 학벌을 주조하고 양산하는 산실로 전락되고 있으며 우리 사회는 학력의 수직적 분화, 즉 고학력화의 심화와 더불어 학력의 수평적 심화인 학벌화가 고착화 되고 있다.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이익이 수반되는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국민의 눈과 귀를 자처하는 언론기관과 고등학력을 산출하는 상아탑마저도 몇몇 안 되는 ‘일류학벌’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일류학벌주의’는 우리 사회의 양지에서 한편으로는 권력과 금력의 실세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필력(筆力)과 학력(學力)의 실세로서 그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위세에 걸맞게 이미 우리 사회 일각에서 'SKY대학'이라는 ‘지극히 고상하고 높은 칭호’를 부여받은 일부 ‘명문대학’들은 대학 자체의 이름이 ‘권력마패’ 혹은 ‘문화화폐’로서 브랜드화 되어 ‘일류대학’이라는 명품이 됨은 물론 타 대학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난공불락의 ‘상아탑 요새(要塞)’가 되고 말았다.
대다수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명품 브랜드’를 획득하기 위하여 재물과 시간 및 노력을 쏟아 부으면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이들에게 ‘일류학벌’은 곧 ‘생의 일차적 목표’이자 ‘궁극적 사명’이며, 또한 ‘출세의 보증수표’ 이자 ‘지고의 선(善)’ 이다. 이들에게 타 대학은 ‘명품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는 치장용 내지 보조용이거나 마지못해 차선책으로 선택되는 ‘간판용’ 일는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자조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세칭 ‘SKY대학'은 학벌주의의 산실이자 학벌사회의 온상인가? 한국 사회에서 ‘일류대학 브랜드’는 과연 권력과 금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마패인가 화폐인가? 소위 ‘SKY'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은 ‘일류 브랜드’를 빛나게 하기 위한 들러리인가, 갈채를 보내기 위한 박수부대인가? 아니면 고학력을 양산하는 주형인가, ‘학력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고학력 간판을 파는 ‘학위판매처’인가?
이런 질문이 본의 아니게 대학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사기를 저하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있다면 해당자 모든 분들께 심심한 양해와 용서를 구한다. 한국 사회에서 소위 ‘명문대학’만이 제 ‘브랜드’ 구실을 하고 나머지 대학들은 차별과 편견을 받으며 ‘브랜드’ 자체가 제 구실을 못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몇몇 ‘명문대학’들이 학연으로 패거리문화를 조성하여 사제간 혹은 선후배간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기득권을 고수하고 기회를 선점할 수 있도록 방임한 사회구조는 누가 타파해야 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특정 소수 학벌집단만이 권력과 갖은 이권을 독점하면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 국가 장래를 위하여 올바르고 현명한 일인가.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학벌사회 구조를 타파할 강력한 의지와 혁신적인 방안이 있는 지를 정부와 대학행정 당사자에게 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주의의 뿌리를 도저히 근절할 수 없다면 적어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도 시급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시기가 적절치 않다거나, 차선책이 없다거나, 사안 해결이 쉽지 않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미루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득권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나누어 가지고자 하는 아량을 베풀기 바란다. 달달한 포도즙도 묵게 되면 신맛이 나고 나중엔 취기를 유발하는 술이 되는 이치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