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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구 칼럼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재무예산실장
[최연구 칼럼] 최연구
유시민 의원의 발언파동과 민주주의
최연구 / 국제관계학 박사, 본지 전문위원
국회의원 당선후 선서때 ‘면바지에 캐주얼 차림’으로 나타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유시민 의원이 이번에는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비판”으로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정작 본인은 “국회에서 한번 이의를 제기할테니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보라”고 했다는데, 결국 국회에서 문제를 제기하지도 못하고 엄청난 반대를 맞았다. 반대의 주역은 단연 언론이었다. 언론은 하나같이 유시민에 대해 공세를 퍼부었다.

한겨레 신문도 관련기사에서 “네티즌 60%, 유시민 파시즘 발언 동의 못해”라고 타이틀을 뽑았다.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유시민의 발언에 공감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다. 포털싸이트 네이버의 인터넷 투표 결과에 의하면 3천6백66명의 응답자중 60.5%가 ‘국회의원으로서 자격미달인 발언’이라고 답해 반감을 표시했고, 연합뉴스 온라인 투표에서는 65%가 동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언론은 일제히 유의원의 경거망동을 나무랐고, 절대다수가 그의 발언에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필자 역시 유의원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런 문제를 제기한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우선은 우리가 수십년간의 장기적인 군사독재를 겪었고 파행적인 애국과 인권유린을 경험해왔기 때문이고, 또한가지는 유시민 의원은 전범국가이면서도 전후 민주적인 제도를 착실히 다져온 자유민주주의국가 독일에서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파시즘이라는 원죄 때문에 지나친 애국주의나 극우를 경계해온 독일적 상황이나 관점에서 보면 그런 문제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과 독일은 분명히 다르다.

어쨌거나 이번 파동을 지켜보며 느낀 점 몇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우선 유의원의 발언은 한국적 상황에는 부적절하지만, 그가 사태수습을 위해 해명한 글에서도 밝혔듯이 언론에 의해 잘못 전달된 부분도 있다는 점이다. 언론은 그의 발언을 ‘국기에 대한 경례는 파시즘’이라고 단순화시켜 보도했지만, 그가 해명한 글을 보면 그의 발언의 뉘앙스는 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유의원은 사태가 불거지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곧바로 올린 해명에서 발언의 취지를 두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는 국민의례가 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로잔치에서까지 굳이 국민의례를 할 필요가 있느냐, 삼성 라이언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하는 야구경기에는 국민의례보다는 두 구단의 응원가를 번갈아 불러주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기에 대한 경례가 아니라 맹세를 문제삼았다는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상징물인 국기앞에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을 공개적으로 서약하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내면적 가치를 국가가 정한 의식을 통해 공공연하게 고백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그의 해명이 경청할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두절미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는 파시즘이라고 단언했다’는 식의 보도는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또 한가지는 언론이 보도한 여론조사를 보면 60%이상의 답변자가 이 발언에 반대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이 절대다수로 치환될 수 없는 수치라는 것이다. 언론의 해석대로라면 유의원의 발언에 동감한 40%에 가까운 나머지의 의사는 깡그리 무시해도 좋다는 것일까. 학교에서는분명 “다수의 의견에 따라야 하지만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민감한 정치 문제에서 이 원칙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려지는 결론은 한국사회의 ‘똘레랑스(관용)의 부족’이다. 북한, 애국심, 반미 등의 이데올로기 문제나 동성애, 근친혼, 외설 등 성문제에 있어서 한국민의 정서는 약속이나 한 듯 전체주의적으로 치닫는다.

자유로운 비판은 ‘자격미달’이나 ‘시대착오’ 로 매도되고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다. 필자는 유의원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볼테르가 남긴 다음과 경구로 대신하고 싶다. “나는 당신이 말한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정치적 이견을 용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그 이견이 탄압받을 때는 싸울 수 있는 자세가 바로 민주주의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최연구 칼럼 | 입력 : 03-06-02 오전 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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