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주의 시대에 가치 창조가 주로 ‘공장과 자본’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지식정보와 인적자원’이 수익의 원천이 된다. 이제 ‘지식정보’는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줄 미래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때 벤처사업이 호황이었을 때, IT(정보공학)산업이나 BT(생명공학)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아는 것은 힘”이라는 격언이 있는데,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아는 것은 돈이고 자본’인 것이다. 요컨대 지식과 정보는 진리의 근원이라기보다는 수익의 근원인 셈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국가 장래를 좌우할 만큼, 교육은 중요한 국가적인 사업이라는 이야기다. 고등지식인을 양산하는 대학교육은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대학교육 현실을 보면 지식기반사회론이 무색해진다.
대학은 지식의 보고이자 훈련장일진대,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지식의 기반이 그리 튼튼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지식의 기반이 있기나 한지, 있다면 도대체 무엇인지 의문스럽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데서 보여지듯, 우리 사회는 사회 전체가 전반적인 부실공사로 지어진 불안한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이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학문의 기초가 탄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교수의 대다수가 미국 박사 출신이라거나 학문의 성격이 서구 일변도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정작 대학교육에서 필요한 학문의 기초가 제대로 교육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양교육의 부실이나 기초학문의 홀대 현상은 어느새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예컨대, 철학이나 사회학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바탕을 이루는 기초학문인데, 철학과나 사회학과는 매년 학생 정원 채우기를 걱정해야 하는 비인기학과로 전락했다. 비인기학과가 인기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취업이 잘 안되거나 전망이 없기 때문이다.
무릇 철학이나 사회학, 역사나 지리는 인문 사회과학의 골간이건만,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건축에서 기초공사가 중요하듯, 학문에서도 기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철학이나 인식론, 글쓰기와 사회사상 등은 비단 전공 학생들만의 학문이 아니라 지식인의 교양이자 기본적인 소양이 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현장에서 기초학문은 조직적으로 외면되고 있는 것이다.
기초의 중요성은 작년 월드컵 축구에서도 분명히 입증되었다. 월드컵 출전사상 1승도 올리지 못한 축구 변방이었던 한국팀은 동구 강호 폴란드를 무너뜨린 후 매 경기마다 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강호를 차례로 격침하며 4강 신화를 창조했던 한국 축구를 회고하며 필자는 히딩크식 축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근본적인 교훈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한국팀을 세계최강팀의 반열에 올려놓은 히딩크식의 축구에는 단순하지만 자명한 진리가 있다. 히딩크식 축구경영의 특징은 기초(펀더멘탈)체력강화, 단기 실적보다는 장기 목표를 밀어부치는 뚝심, 개인보다는 팀워크, 멀티 사커 등을 들 수 있다.
히딩크는 축구는 정신력이나 개인기로만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기초 체력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는 체력을 스피드, 파워, 지구력으로 세분한 뒤 체력훈련 프로그램을 꾸준히 시행했고, 덩치 큰 유럽선수들과 상대할 것을 대비해 거친 몸싸움 훈련을 끊임없이 실시했다고 한다.
현대 축구에서는 몸싸움에서 지면 끝이라는 히딩크의 생각은 기초의 중요성을 웅변해준다. 대학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기초체력 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히딩크식 훈련은 대학 교육에도 그대로 도입되어야만 한다. 이런 근본적인 관점의 대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식기반사회론은 아무리 떠들어봐야 메아리없는 공허한 외침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