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홈 > 뉴스 > 칼럼/이슈 홈

목록
프린트 스크랩
"할 얘기하고 당당하게 부시 만나라"
옆집에서 불이 나면 무조건으로 끄고보는 게 상책이다. 119에 신고도 하고 불이야 하고 소리치기도 하고 동네를 발칵 뒤집어놓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직접 옆집으로 쳐들어가 불을 끄는 것에 비길만한 것은 없다.

옆집 불이 옆집 사나이가 일부러 낸 거고, 카드회사의 빚독촉에 견디다 못해 일종의 자해의 목적으로 낸 불이라고 해서 수수방관만해서는 큰 코 다친다. 옆집 사나이와 '나'와 막역한 사이이고 결코 '나'를 해꼬지할 의사가 없었다 하더라도, 옆집 사나이가 낸 옆집 불을 강건너 불구경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불은 친소(親疎)를 알지 못한다. 불을 낸 사람이 '나'와 막역한 사이이고 전혀 '내'게 해되게 할 의사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해를 끼칠 의사가 있었다면 카드회사의 사장일 뿐이었다 하더라도, 그건 중요치 않다. 그건 차후의 문제이다. 일단 나는 옆집으로 불을 끄러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간 당장에 나의 집이 불타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전 나종일 보좌관이 미국에서의 기자회견에서 뻬이징 회담에 우리측이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TV 토론에서 이를 확인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표명이었다. 배경은 이렇다.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을 상대로 한 것이고, 그러므로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알아서 풀면 되고 굳이 우리 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맞는 얘기이다. 이치적으로는 그와같다. 그러나 문제는, 불은 그와같은 이치를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른다는 그 점이다. 불똥은 당연히 미국을 향해서만 튀어나가야 옳겠지만, 이치를 모르는 막무가내인 불똥은 그와같이 움직이질 않는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도록끔 되어있는 게 불똥의 생리이다.

북한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남한이다. 북한에 불이 난 게 사실이라면 그 불똥이 가장 먼저 튈 것은 남한이다. 그리고는 중국이거나 일본이다. 일본은 잠재적 북한 발 불똥을 빌미로, 재무장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을 선제공격해야한다는 소리도 튀어져나오고 있다. 이건 북한의 불똥보다도 더 치명적이고 경계해야 할 불똥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수수방관만 하겠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니까 빠져있어도 좋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을 끄러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DJ는 떠나면서 말했다. 위대한 국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DJ의 말이 아니더라도 실상 우리 국민들은 위대했다. 위대한 국민들에게는 이를 대표할 수 있는 위대한 정부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위대함은 상처가 되고만다. 헌데, 슬픈 일이지만, 역대 우리나라 정부는 위대하지 못했다. 오히려 졸렬했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상처와 고통과 아픔으로 점철된 것은 이와같은 사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 정부가 과거의 졸렬한 정부의 예를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 개혁이란 바로 과거의 졸렬한 정부들과 같은 우(愚)의 악순환을 끊고 거듭나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헌데, 옆집에서 불이 났는데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끄러가지 않겠다니. 옆집에 불이 났는데 누가 당사자고 누가 당사자가 아니란 말인가.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이 가장 큰 당사자가 아닌가.

현 정부가 역대의 졸렬한 정부의 그 길을 답습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심히 염려스러움을 금치않을 수가 없다.

이호림 객원기자/ 영서대, 영남대 강사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3-05-10 오전 8:30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목록
프린트 스크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1

최신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