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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식 칼럼
손광식 칼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경향신문 경제부장, 편집국장, 주필 
문화일보 주필, 전무이사  / 문화일보 대표이사 사장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현재) 상지컨경영설팅(주) 회장,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고문

* 주요 저서
- 
한국의 경제관료(공저), 1979  / 거탑의 내막(공저), 1983 /  한국의 이너서클, 2002 

[손광식 칼럼] 상지경영 컨설팅 회장
‘코드’ 속에 무엇이 흐르는가
손광식 / 언론인
‘코드’라는 말을 놓고 그 용어 표기에 논쟁이 붙은 일이 있다. 그 말이 우리 식 발음으로 전파되고 있어 생긴 것 같은 데 듣고 보면 묘한 구석이 있다. 영어의 code는 발음이 [koud]이고 cord는[k)ːrd] 니 다른 말이다. 노무현 정권이 등장하고 장관을 비롯하여 여러 중요한 보직 인사 발탁 과정에서 빈번하게 출몰하는 말이니 줄 끈 혹은 촘촘히 짠 옷감을 말하는 cord의 ‘코드’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코드도 ‘코드’지만 사전을 찾아보면 법전 규범이라는 설명을 넘어 암호라는 뜻이 나타나는 code가 있는 데 그 ‘코드’가 아니냐고 묻는다. 하긴 금단지역을 통과하려면 암호가 맞아야 한다. 여기까지 이르고 보면 ‘코드’는 연줄이 아니라 암호라 풀이하는 것이 더 그럴 듯 하다.

생각이 같고 방향이 같아야 새 정권에서 ‘한 자리’를 할 수 있다고 보면 ‘줄’이 아니라 ‘암호’에 가까울 듯 싶다. 파격적인 발탁 인사의 배경을 설명하라고 할 때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아서’라면 그걸로 끝이다. 새로 얼굴을 드러낸 지배 엘리트들 사이에는 무엇인가 오가는 신호들이 있는 모양이다.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은 그 무엇을 ‘운동권 진영’ 혹은 ‘그 편에 서있던 사람들’로 생각한다. 복잡하게 정치관이 어떻고 미국을 어떻게 보고 남북문제에 대한 스탠스가 어떠하며 노사관이 어떻고 주류는 386세대라고 하면 설명이 길어진다. 어떻든 이 ‘코드’는 강단으로부터 장관과 각료들을 체제 속의 요직에 끌어냈다. 그리고 이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권력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이제 ‘코드’라는 교감은 엄청난 생산력의 수단이 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코드’는 두 번에 걸쳐 상상할 수 없는 생산물을 산출한 바 있다. 그 하나는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이고 다른 하나는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이다. 8백 만 명의 ‘붉은 악마’를 거리로 일시에 동원한 것은 ‘대~한민국’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해독이 난해하고 복잡한 암호 ‘코드’이다. 행동은 월드컵 팀 응원으로 나타났지만 그 암호 속에는 단절(구 세대와의) 연합(2030 세대) 창조(월드컵 16강 8강 4강) 국가(대한민국!)가 내장된 암호였다.

그리고 그 암호는 얼마 후 하루 밤에 대통령을 만들어 냈다. 거창한 계획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선전 선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바로 암호의 괴력이었다. 적어도 지난 1년 동안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코드’가 만들어 낸 역사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 그 ‘코드’를 쥐고 있던 쪽이 권력도 잡고 주류를 이루어 가고 있다. 체제 밖에서 운동을 하던 시대는 마감되고 재야에서 목청을 높이던 이벤트도 사라졌다. 이제는 암호 속에 묻어 두었던 전술과 전략을 국가경영으로 바꾸어야 하게 되었다. 딱 집어 말하라면 ‘운동’이 아니라 ‘생산’이란 말이다.

저 80년대 질풍노도의 시절 나는 15인의 혁명 전사와 반체제 투쟁가들의 <진술서>을 탐독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당시 구속중이던 유시민의 장문의 항소 이유서도 보았다.

타파해야 할 현실에 대한 절절한 비판과 자신들의 새로운 가치 창출의 이상과 이념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어둠이 가시지 않고 체제는 그들을 형장으로 감옥으로 보내는 이유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것은 ‘운동’이지 스스로 권력을 잡고 이념을 실체화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운동권 정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붕괴되었다.

재야 변호사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고 유시민은 개혁정당 후보가 되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제 예의 ‘코드’는 한국의 정치 지형마저 바꾸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진보의 정치’를 개화시키려 하는가. 그건 두고 볼 일이다. 국가 이념보다는 민족 이념의 성향으로 세계화와 미국의 일국주의를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그 귀추가 흥미롭다.

일찍이 로자 룩셈버그나 한나 아렌트 조차도 권력이라는 틀은 집권을 하면 그 스스로 보수화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개혁’이란 정치 용어도 급진적인 인상을 무마하려는 타협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 축으로 한 집권 세력의 ‘코드’를 흐르고 있는 진정한 이념은 무엇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손광식 칼럼 | 입력 : 03-05-06 오전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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