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한국대학신문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부추기고자 하는 의도 또한 추호도 없음을 미리 밝혀둠.
02 주장
‘당신의 오늘에 반대한다’는 모 회사의 방송 CF에 반대한다.
이 광고의 요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꾸준히 뭘 준비해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이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최고의 파트너라는 것. 고로, 목돈 좀 가진 이들이여, 제발 우리를 선택해 달라, 그럼 우리 회사가 그대들에게 보다 밝은 내일을 선사하겠다, 대체로 뭐 그렇고 그런 것이다.
그럴 듯하다. 하지만 광고는 어디까지나 광고일 뿐. 분명히 할 것은 이 광고가 국민 대다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디까지나 ‘목돈을 좀 가진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것이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이 광고를 보며 착각 또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부지런히 내일을 준비하는 ‘성실한’ 화면과 목돈 덕분에 여유 있게 웃고 있는 ‘기름진’ 화면이 순간 겹쳐 보이는 현상! 이러한 현상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이들에게는 심지어 ‘바다이야기’ 같은 화면이 눈앞에 아른거리기까지 한다.
착각 또는 착시를 조심하라. 때문에 ‘당신의 오늘에 반대한다’는 모 회사의 광고 카피 역시 조심하라. 얼핏 잘못 읽으면, 우리 주위에서 흔히 회자되는, ‘내일을 위해 오늘은 사는 사람들’, ‘새벽 첫차를 타는 사람들’, ‘착한 개미군단’ 운운하는 부류 혹은 집단들이 일거에 무참하고 비루한 부류 혹은 집단으로 돌변할 수도 있으므로.
03 사뭇 심각하게 말하기
개강을 맞는 대학가 첫 풍경은 전쟁 그 자체다. 아침 9시 모니터 앞으로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이른바 수강신청전쟁. 누군가 대신해줄 사람 혹은 광고에 등장하는 친절한 회사 같은 건 애시당초 없다. 경쟁이다. 몇 초 사이에 승부가 갈린다. 희망하는 과목을 듣게 되는 경우, 승리자다. 실패한 경우, 수강정정 기간에 리벤지 매치를 펼쳐야 한다. 주몽이 무예를 익히듯 그렇게 자판과 마우스를 손에 익혀야 한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다.
전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강신청 이후 다음 승부처는, 어떻게 하면 높은 학점을 취득하느냐다. 그 다음은, 단기어학연수 시기를 놓고 다시 고심을 해야 한다. 돌아와서는 각종 어학시험에 대비해야하고 그 와중에서도 각종 취업 정보에 귀를 열어놔야 한다. 공모전을 통해서 일찌감치 ‘승점’ 또한 비축해둬야 한다.
이익이 나는 곳에 투자하라. 주위를 둘러보라. 재테크의 귀재들이 활보한다. 나이 스물이 적은 나이가 아니다. 이윤을 창출하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람. 일찌감치 대비를 해야 한다. 한 발짝 실수하는 날이면,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다. 그럼 취업은 도루묵이다. 내일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내가 대한민국 대학생이다. 상반기는 성공했나니 하반기에 더욱 박차를 가하자. 이번 ‘종합계획’이 나의 내일을 좌우한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04 (주로 프랑스쪽) 석학들의 충고
“인간은 진실을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먹고사는 것이다!” 말로센 시리즈로 이미 호가 날대로 난 프랑스의 소설가 다니엘 페낙의 지적이다. 세계 석학들의 대학 방문이 줄을 잇고 있는 요즘이다. 대한민국 대학생들이여, 그대들의 내일이 궁금하다면 그들에게 물어보라. 혹 ‘내일’을 묻는데 ‘오늘’을 대답해줄지도 모른다. 그들은 석학이기에. (으레 행사 마지막 날 기자들이 석학들에게 방한에 관한 인상을 물으면 이런 답이 돌아오곤 한다. “한국의 미래를 왜 외국인인 내게 묻죠?”)
만약 그들 가운데 프랑스 최고의 석학으로 손꼽히는 자크 아탈리가 끼어있다면, 그의 답변은 미리 들려줄 수 있다. 그의 책에 이미 씌여있으니. “그럼에도 미래란 여전히 드라마틱한 것. 깨어라(Turn on), 돌진하라(Turn in), 빠져 나와라(Drop out) 그리고 행복하라(Get well)”
결론은, 세상의 모든 ‘모범답안’에 반대하라는 것. 모범답안은 대부분 ‘뻔한’ 답안이기 때문.
이승호 객원기자 news@un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