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왜 초록색 꽃을 볼 수 없을까를 곰곰이 생각하곤 했지만 오십대 중반에 다다른 오늘날까지도 초록색 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면 초록색 꽃은 없는 것일까? 만일 없다면 왜 없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아직도 얻지 못하고 있다.
싱거운 물음에 연연하여 공연히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이 질문은 묘한 자연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본다.
비근한 예로 우리나라 대학의 난제 중 하나인 ‘동종교배적 학문 풍토’를 들 수 있다. 역사적 사료에 근거할 때 ‘동종교배적 학문 풍토’의 초창기는 과거제도가 도입되던 고려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당시 과거시험관인 좌주(座主)와 이에 합격한 문생(門生) 간엔 부자(父子)관계에 필적할 만한 긴밀한 인간관계가 맺어졌다.
이러한 좌주문생관계는 붕당이나 학벌을 조성함은 물론 입신출세를 위해 상부상조하는 패거리 문화를 조성하게 되었다. 조선 개국과 더불어 조선왕조는 과거(科擧)를 핵으로 한 ‘학문적 패거리 문화’ 타파를 주창하고 시도하였지만, 조선 중기에 이르러선 더욱 심화되어 고질적인 당파로 발전하고 급기야는 당쟁으로 비화되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학문적 패거리 문화를 고착화 하게 되었다.
패거리 문화의 폐단이 얼마나 극심하였던가를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위로 공경서료(公卿庶僚)부터 아래로 일반 선비에 이르기까지 당을 갖지 않은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당이 같은 자는 도와주고 당이 다른 자는 배척하여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오직 자기편을 무조건 돕고 반대편은 무조건 공격하기만을 일삼습니다.”
이 실록은 또한 ‘비록 재주와 식견이 출중한 자가 있다 하더라도 저희 당 사람이 아니면 갖은 방법으로 배척하나, 설혹 행실이 용렬하고 학문적인 그릇이 작더라도 저희 당에 붙으면 모두 함께 추켜세워 반드시 벼슬에 오르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오늘날 우리 대학 사회와 비교해 볼 때 아주 흡사한 양상을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소위 일류라고 일컫는 몇몇 대학에서는 신규 교수의 채용 과정과 임용에서부터 보직 선임과 진급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사제지간, 선후배지간 혹은 같은 대학 출신이 아니면 동류의 패거리에 합류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 되고 있다.
심지어는 학문적인 연구 활동에 있어서도 동류가 아니면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록동색’(草綠同色)만이 기득권 고수를 위한 최선의 방책이며 ‘동종교배’만이 학문 유지를 위한 최상의 방법이라는 자아도취 내지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고 있다.
왜 꽃은 초록색을 띠지 않는지, 왜 코스모스는 빨강, 분홍, 흰 꽃을 피우는지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학문의 동종교배’나 ‘학문의 근친상간’을 피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순종의 과수보다 접목된 과수가 더 먹음직하고 더 보암직한 열매를 맺는 이치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구미(歐美)의 ‘세계적인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할 때 왜 동종(同種)보다는 이종(異種)을 선호하고 단순한 학문적 배경보다는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더 선호하는지를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단지 자신의 기득권 고수를 위해서 혹은 향후 ‘안정된 학문 활동’을 위해서 자신을 적극 지지하고 떠받들어 모실 ‘순종파’를 끌어 들이고 퇴임 후에도 자신을 보호하고 후원해 줄 ‘친위대’를 구성한다면 이는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식물이 왜 초록색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일까? 필자의 짧은 소견이지만 대부분 식물들의 잎이 초록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잎과 다른 색의 꽃을 피워 종족번식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닐까?
만일 푸른 이파리에서 초록색 꽃이 핀다면 알찬 열매를 맺게 해줄 벌과 나비를 현혹하는 아름다움을 띨 수 있을까? 우리의 대학인들이여, 진정으로 학문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초록 잎사귀에서 초록 꽃을 피우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계속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