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게 빗대어서 미안하지만, 대학에서 정교수쯤이 되면 아마 구렁이이라 불러모 민망할 것은 없다. 그쯤되면 저마다 우뭉한 표정들로 나름대로의 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 바로 대학사회일 듯 싶다.
대학만큼 어줍지 않게 절차를 만들어 놓는 곳도 이 사회에는 별로 없을 성 싶다. 회의도 꽤나 자주 연다.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 모두는 먹이깜을 요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실감나는 예 하나가 있다.
어느 학과에서 신임교수를 선발하려고 부리나케 교수회의를 열었다. 잘가르 칠 사람, 열심히 연구 할 사람을 뽑자고 합의했다. 응시자들의 강의능력을 검토하자고 합의도 했다. 그들의 강의시연이 끝나면 곧 바로 과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1, 2위 후보를 가려내기로 했다.
어느 교수도 이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정한 것은 번복하지않기로 했다. 마침내 교수들이 둘러앉아 투표를 실시했다. 참석교수 9명중 6표를 받은 1위가 결정 되었다. 다른 후보자는 겨우 3표를 얻어 2위가 되었다. 결격 사유가 없는 한 6표를 받은 1위 후보자를 신임교수로 선발하자는 것이 그들이 약속한 민주주의적 합의였었다.
그런데 심기가 불편하기 시작해진 구렁이 한마리가 있었다. 어제 결정대로 하게 되면 찍어놓았던 먹이깜을 날릴 판이었다. 자기먹이에 초를 치고 싶지 않았다. 구렁이 나름대로 수를 생각해냈다. 그는 능구렁이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인간적으로 싫어하기는 했지만, 구렁이보다는 늘 한 수 위에 있어서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능구렁이의 이름으로 교수회의를 다시 소집해달라고 앙청했다. 그가 그렇게 응했다. 손해 날것이 없다는 능구렁이 나름대로의 계산이 한몫 했다.
다음날 꼭두새벽에 교수들이 다시 모였다. 눈꼽도 떼지않은 채 였다. 전날 결정은 어딘가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었다. 구렁이 나름대로의 변이었다. 재투표를 해야 한다고 했다. 공포 분의기였다. 이것 저것 따져보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능구렁이도 거들었다. 자기 면을 세운 것이었다, 화기얼얼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투표했다. 딱 3사람만이 찬성했다.
구렁이와 능구렁이, 그리고 허깨비 셋이 어제 결정을 뒤바꾸는 일에 찬성했다.계산된 찬성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미 3사람은 기권했고 2사람은 반대했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아예 참석거부로 반대, 말하자면 총원 9명중 6명 반대에 3명 찬성이었지만, 막무가내였다.
최다득표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수학자들에게는 이상한 논리이였지만, 어쩌거나 3명이 찬성했다는 근거가 만들어 지자마자 전날 정한 후보자 순위는 삽시간에 뒤바뀌어 졌다. 구렁이들의 민주주의, 어쩌면 교수채용의 비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것에 만족해진 구렁이와 능구렁이는 또다시 긴 똬리를 틀며 연구실로 기어들어갔다.
이제 모두가 이조시대 선비 신흠(申欽)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봐야 한다. 선비를 일러, 그는 뜻을 숭상하고, 배움을 도타이 하며, 예를 밝히고, 의리를 붙드는 사람, 청렴을 뽐내며,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의 글을 이 시대 속에서 제대로 읽어가기 바라는 어느 학자는 이렇게 주석을 길게 단다. “선비란 올바른 뜻을 지니려 노력하는 자다. 그는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잘못된 길을 밝혀 그 까닭을 살핀다. 그의 행동은 의로움에 바탕하며, 욕심을 부려 탐욕에 물들지 않는다.
바르지 않은 행동에는 부끄러워 할 줄 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만나보기 어렵다. 마음 밭은 돌보지 않고, 새로운 배움에는 관심이 없다. 하던대로만 하고, 제게 좋은 일이면 염치(廉恥)를 불고(不顧)한다. 앞뒤도 물불도 가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소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