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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칼럼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재영 칼럼]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조선'과 '동아'는 성역인가
우리 사회에서 친일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광복절 다음날 KBS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이 민감한 이슈를 주제로 삼았다. 그것도 일등신문이자 민족지임을 자부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일제하 민족언론을 해부한다’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과 정반대되는 사실들을 생생하게 전했기 때문이다. 조선과 동아가 일제 말기에 폐간된 사연이나 동아의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의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 등이 그렇다. 한마디로 일제 강점기 조선과 동아의 친일 행각은 “왜놈 신문보다 더 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뒤 조선과 동아는 자신들의 지면을 통해 반박의 포문을 열었다. 이 프로그램이 사료를 왜곡했으며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도적 왜곡이 드러날 경우 법적인 수단도 동원하겠다고 한다. 지금 조선과 동아의 친일 시비는 사이버 공간으로 옮아가 여전히 논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그러하듯 언론의 역사도 시련의 연속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침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언론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일제의 통제가 극에 달했던 시절 일제에 어느 정도 협조하지 않고는 명맥조차 유지하기 힘들었다는 항변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조선과 동아가 초기에는 압수와 정간 등의 탄압을 받으며 민족지 구실을 했으나 점차 친일 어용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에 손가락질보다 연민이 앞서기도 한다.

문제는 오늘날 조선과 동아의 태도다. 상식적으로 나올법한 유감 표명이나 해명은 없고 맞공세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그것도 대통령이 두 신문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한 시점에 이 프로그램을 방영한 의도를 따지거나 일제 강점기 말이라는 특정 시기만을 부각시킨 것은 공정치 않다는 식으로 본말을 전도시키고 있다.

의로운 투쟁을 벌인 독립지사를 ‘범인’으로 표현하고,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에 내몰기 위해 “황국신민된 사람으로 그 누가 감사치 아니하랴”고 독려하며, 제호 위에 일장기를 게재하는 과잉 충성을 했다는 사실 여부가 문제의 핵심 아닌가. 그렇다면 사실을 부인하던가, 당시의 정황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이라도 하는 것이 진실과 신뢰를 생명처럼 여기는 언론의 정도(正道) 아닐까.

사실 조선과 동아의 본말전도식 자기방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까운 예로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이 작년에 조선과 동아의 전 사주가 포함된 708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하자 두 신문은 선정의 객관성에 의혹을 제기하며 불만 섞인 반응을 보인바 있다. 조선은 그 이후 한술 더 떠 창간 특집에서 방응모를 항일 언론인으로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조선과 동아는 역사적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이를 왜곡해 항일 민족지임을 강변하고 있다. 게다가 이를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에 신경질적인 과민반응을 일삼고 있다. 마치 자신들이 우리 사회의 성역(聖域)인양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성역을 자처하는 한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성역으로서의 언론은 오히려 사회의 독이 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성역을 욕되게 하는 모든 행위는 범죄 취급을 당한다. 범죄가 몰고 온 위기는 그 책임을 뒤집어 쓸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해소된다. 이 과정에서 위증과 공모, 군중 선동이 공공연하게 행해진다. 성역을 더럽힌 범인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끔찍한 처형을 당한다.

더 무서운 사실은 군중들 스스로 이 일이 얼마나 큰 폭력인가를 끝내 깨닫지 못하는데 있다. 처벌은 어디까지나 신성모독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가 1931년 발표한 장편소설 『성역(Sanctuary)』의 내용이다. 그래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우리 시대의 성역이길 바라는가.

김재영 칼럼 | 입력 : 03-08-23 오후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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