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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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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육개발원(부연구위원, 연구팀장)
- 미국 피츠버그대 국제교육연구소 초빙연구원(풀브라이트 재단)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박사과정(교육행정 전공)

[천세영 칼럼]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고급공무원 할당제 이공계 기피 못 막아
천세영 / 본지 전문위원, 충남대 교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최근 부쩍 시끄럽다. 여러 가지 대책들이 또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에 가장 환영을 받는 대책의 하나가 고급 공무원의 일정비율을 이공계로 반드시 채우자고 하는 방안인 것 같다. 여성할당제와 지역할당제도 있으니 이공계할당제도 자연스러운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딘지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고급공무원 또는 기업의 최고관리자 중에서 이공계 출신자가 적은 것이 바로 이공계에 대한 푸대접에 따른 이공계 기피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이 점부터 고쳐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른바 이공계 인력과 인문사회계 인력의 용처는 다르게 되어 있다. 쉽게 말해서 이공계 인력은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인문사회계 인력은 생산물을 저장하고 분배하는 곧 관리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학교에서부터 배우는 과목들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며 미국의 MBA가 경영학석사를 뜻하는 바 또한 그것이다. 관리직에 이공계가 진출이 안되어 온 것은 이공계에 대한 푸대접이라기보다는 원래부터 그런 부분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공계 인력이 직접 생산에 참여하기 보다 관리에 더 참여를 하게 된다면 반대로 관련 기술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문사회계 인력이 생산활동에 참여를 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고 그 결과야 뻔한 이치이다.

문제는 관리직 중의 이공계 비율이 적은 것이 아니고 관리직에 과도하게 또는 비합리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권한과 권력이다.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관장하는 기상학 박사가 행정사무관 과장의 지휘를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지휘 내용 중 태풍의 진로를 기상학 지식에 근거하여 판단하여 발표하고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상급자의 정치행정적 판단에 근거하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권한의 배치는 업무의 성격에 따라 균형있게 이루어져야 함에도 비근대적이고 전통적인 구습을 개혁하지 못하고 관리자가 생산현장의 기술적 사항까지 결정을 할라치면 전체 시스템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안대로 고급공무원에 이공계 인력을 일정비율 이상 채용하려 들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초기에는 여러 가지 합리적 방안들이 이론적으로 혹은 탁상공론식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시험으로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며, 이공계 대학생들은 모두가 학교 때부터 고등고시 준비에 열을 올리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류대학교 공과대학 학생들이 학교공부를 떼려치고 고시학원 주위를 맴돌고 있는데 이를 부추기겠다는 것이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상당히 고심하여 현장의 경험 있는 인력을 초빙하는 방안을 쓸 수도 있겠으나 이 역시 한 두 번 안 해본 일도 아니고 또 그 결과가 어떠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결국 고급공무원 할당제를 하겠다는 방안은 미봉책이거나 듣기 좋은 얘기에 그칠지 모른다.

이공계는 본디 현대 산업사회의 주역들이다. 그것은 농경사회가 농자가 천하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당시에도 농사꾼이 사회의 지배층이 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농사는 그만큼 중요한 사회기반으로 여겨졌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고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한때 충실히 하였으며 그 결실이 오늘날 기술입국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30여년전에 세워진 대덕과학단지의 잘 가꾸어진 이공계 연구소들을 보노라면 이것이 바로 오늘의 한국을 낳게 한 원천인가 싶을 때가 있다. 당시에 이만한 인프라를 갖출 수 있었다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30여년전에 갖추어진 인프라가 그 이후로 답보 상태를 걸어온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사회 각 부문이 발전한 정도에 따라 이곳의 시설과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긍지도 함께 올라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인 증좌를 대라면 많겠지만 간단히 얘기하여 30여년전 대덕과학단지에 초빙하였던 과학기술 인력에 주어졌던 파격적인 유인책들은 지금 하나도 없다. 실업계 고등학교들에 주어졌던 국가적 투자도 없어진 것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치 이제는 그런 것들이 필요없다는 것 같이 말이다. 과연 그러할까?

지난 반세기에 걸쳐 투자해 온 과학과 교육이 오늘날 한국의 견인차였다면 오늘의 뒤쳐진 과학과 교육은 한국의 미래를 자꾸만 뒤에서 미끌어내리는 딴지 역할을 하게 될까 두려울 뿐이다. 제발 한 두 가지 화려한 사탕발림 정책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 놓았으면 좋겠다.

천세영 칼럼 | 입력 : 03-08-23 오후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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