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대학교육의 양적 팽창과 다양성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대학 발생부터 수천년의 시간이 필요했으며 또한 4세기에 걸친 미국의 성장과 발전이 뒷받침된 것이다. 작은 흐름과 조류가 하나하나 더해지기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미국 사회에 교육기회확대와 대중교육이라는 거대한 강을 이루게 된 것이다.
뉴잉글랜드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학
신대륙 미국의 핵심지역인 북동부 해안에 자리를 잡고 미래 리더 양성을 준비하던 신교도의 지도층은 1636년 메사츄세츠 의회를 통해 대학 설립과 운영을 위한 위원회 설치를 승인했다. 이는 국공립 및 사립대학을 포함한 미국 고등교육의 발전에 있어 촉진제가 됐으며 미국 대학 교육의 중요한 특성이 이로부터 연유하게 된다. 교회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고 다른 공공기관으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으며 어떠한 독점적인 관할권 아래에도 있지 않은 대학이 이를 통해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버드대이다. 물론 오늘날까지도 이 대학은 일반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이로부터 미국 고등교육은 순수 민간 지원에 의해 운영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일반인들의 대학 운영은 미국 고등교육의 중요한 특징이다. 학문발달을 자극함과 동시에 외압으로부터 학문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한 외압은 검열제도를 만들거나 이면의 숨겨진 의도와 편견으로 연구를 오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대학 평의원, 법인이사, 행정관료 등으로 구성된 대학 조직은 정보의 흐름이 원활해야 비로소 건강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대학 운영은 사회환경 속에서 대학이 갖는 책무와 기능을 이해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동시에 대학 행정가들은 교수와 학생 그리고 행정체제가 실제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현상들과 사회의 필요를 상호 이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움직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
물론 대학과 사회가, 그리고 대학 행정가와 그 외 다른 구성원 및 행정 시스템이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는 없다. 때로 위해적인 불균형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처럼 우리에게 대학보다 더 나은 시스템은 아직 없다.
하버드대의 설립 그 후
하버드대의 설립 이후 두 세기간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대학들은 사회적 변화와 자극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국가가 요구하는 연구와 발전된 교육이 수행되어지지도 않았다. 이즈음 일어난 계몽운동은 학문 특히 과학에 있어서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시했다. 예일은 화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지식을 다루기 위해 셰필드 과학학교를 세웠고 토마스 제퍼슨은 버지니아 대학을 설립했다.
하버드대 설립 후 정확하게 2백년이 흐른 뒤 유럽으로부터 대서양을 가로질러 새로운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엄격한 방식으로 더 많은 지식을 창출, 전달하기 위해 오늘날로 치면 대학원 과정의 베를린 대학이 설립된 것이다. 철저한 학사관리를 통해 연구와 교육이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이뤄짐으로써 연구와 논의가 학문적 순수성을 유지하는 한 교수와 학생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명제가 탄생했다.
학문 연구에 대한 이같은 새로운 바람은 고등교육과 학문연구에 갈증을 느끼던 미국인들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그들은 고등교육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지를 배우기 위해 해외로 유학을 다녀왔으며 바로 이들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했던 유학파들에 의해 19세기 말 미국 최고의 대학들이 설립되었고 발달과정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
변화는 계속 된다.
1956년부터 1970년 사이에 교육위원회에서는 소수인종 교육기회보장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1960년대 시민권 법안의 통과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끄는 버밍햄 버스 보이코트는 이 논쟁에 힘을 실어줬다. 구 소련과 대비해 교육의 취약성을 인식한 국회는 1958년에 국가 교육법안을 통과시키지만 이것이 소수인종의 교육기회향상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다만 경제 소생 프로그램이나 군대 등과 무관하게 국가가 학생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게 되는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각 분야의 연구를 지원하는 연방정부의 역할은 크게 확대됐으며 이것은 냉전으로 인해 파급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의학, 교육, 사회학 및 다른 많은 학문적 연구에 대한 것이고 그와 같은 연구의 대부분은 사설 연구소보다는 대학에서 이루어졌다.
고등교육은 마치 강줄기처럼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으며 사회의 힘을 키우고 지적인 파워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회의 개방성에 의한 것이며 또한 사회의 개방성은 국가나 종교단체가 아닌 일반인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해 현실화된 것이다.
Land Grant 대학(교육을 수행할 목적으로 정부가 토지를 공급한 대학)으로부터 전공 학문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해 The GI Bill에 의해 학생의 다양성이 정착되었던 미국 사회. 이 사회에 교육받은 시민들을 있게 하고 지식의 팽창과 확산으로 사회가 풍요로와질 수 있게 한 주인공은 바로 대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