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개로 구성된 인간 유전체의 일차적 염기서열을 확인한 인간 유전체 사업의 완성은 특히 의∙약학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합성의약품에서 생물의약품 시대로 전환됨을, 질병과 관련하여서는 유전자수준에서 질병의 원인규명과 바이오칩과 같은 새로운 진단기술의 개발에 따른 예측의학시대의 도래를, 그리고 인간 개개의 특성차이에 적합토록 만드는 맞춤의약품과 유전자치료 등이 현실화됨으로써 생명공학 분야가 혁신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생명공학 분야에서의 급격한 발전의 성과는 의료, 제약, 식량, 환경, 정보 등과 결합하여 다양한 신규 산업을 창출하고 있으므로, 대학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하지만 생명공학 분야의 급속한 발전에 비해 이에 대응하는 대학의 변신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인간유전체 사업 이후 기능유전체학, 생물정보학, 단백질체학, 구조생물학 분야 등이 첨단생명공학의 발전에 필요한 분야로 제시되고 있으나 이러한 분야의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대학에서는 이들 분야의 전문 인력을 시급히 교육하고 배출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정부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분야에 대한 인력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여 제시함으로써 대학에서 이를 근거로 학문 분야의 재편성 등 제도개혁을 통해서 미래지향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고려대학교의 예를 들어보자. 고려대 생명공학원은 1995년 당시 교육부의 ‘대학원중점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됨으로써 설립되었다. 그 과정에서 학사조직의 재편성, 커리큘럼의 조정 등과 관련하여 학내외의 많은 난관과 시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극복하여 현재 특성화된 BK21 대학원 조직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고 이 분야의 선도적 위치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10여 년 전부터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의 구성원들이 단합하여 꾸준히 그리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다. 변화를 향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제는 그 성과가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고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교육과 연구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대학의 역할이 중요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대학은 학문적, 산업적 추세에 따른 미래의 인력 양성을 위해서 생명공학 분야의 정확한 인력수급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구조조정과 학문적 편제조정 등을 과감히 시도해야 한다. 전통적인 기초 생물과학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지만 첨단 생명공학의 관점이 미래 인류사회의 산업적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생명공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생명공학의 특성상 ‘2등’은 살아남을 수 없다. 대학은 교육공급자로서 학과 이기주의나 전공 편의주의적인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수월성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생명공학을 주도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대학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