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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한국의 고등교육
이정규 /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객원교수, 본지 전문위원
세계화가 피치 못할 문명사적인 변혁의 한 흐름이라면 우리나라도 이 도도한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세계화는 동시대에 갑자기 불어 닥친 토네이도도 아니며 태풍도 아니다. 구미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소생하기 시작한 세계화의 바람은 개발도상국들과 비자본주의 국가들에까지 불어 닥쳐 점차 맹위를 더하면서 정치와 경제의 영역을 휩쓸고 이젠 교육과 문화의 영역에도 그 위세를 뻗치고 있다.

이 바람은 현세에 이르러 갑자기 돌풍이나 태풍으로 돌변하여 한반도를 강타한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우리 문화와 더불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였다고 생각한다. 단지 우리가 이 바람의 본질을 잊고 살아왔을 뿐이지 때론 미풍으로 우리의 옷깃을 스치기도 하고 때론 강풍으로 우리의 문을 세차게 두드리기도 하면서 우리 문화 속에 머물고 있었다.

과거에도 불교와 유교가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온 것이 아니었던가! 이 바람을 타고 온 이방의 종교와 문화는 이제 ‘우리 것’이 되어 ‘남의 것’이라는 것조차 망각하고 말았다. 우리는 남의 것을 내 것으로 오인하며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또한 이 세상은 보고 만질 순 없어도 느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공기와 바람, 행복과 사랑이 그런 것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성인이나 철인은 철학적 사색과 종교적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覺)을 얻거나 ‘도’(道)에 이르지만, 범인(凡人)들은 ‘배움’(學)을 통해 ‘앎’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범인에게 있어서 교육은 선각자들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새로운 것을 익히는 과정이자 수단이라 간주할 때, 교육은 문자를 통하여 옛날과 오늘을 넘나들고, 나라와 민족을 넘나들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세계화는 이미 옛날에 시작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옛날이나 지난 세기보다 오늘이나 현 세기가 세계화의 바람이 더 거세게 느껴지는 것은 그 동안 산업과 교통, 특히 지난 세기 말엽부터 가속화된 지식·정보·통신 등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우리의 세계가 동·서양 혹은 육대주라는 대륙의 벽이 허물어지고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축소·통합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오늘 이 순간에 어디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를 내 집 창가에서 바깥 보듯 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언론매체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 세상 뉴스를 듣고 보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지·식·정보·통신·기술은 세계화를 촉진하는 핵심 매체가 되고 있다.

세계화를 활성화하고 있는 동력은 정치?경제적 역동성이지만, 세계화를 가속·확대시키는 것은 고등지식을 구축하고 첨단과학기술을 개발하는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은 이미 세계화의 본류로서 세계화에 필요한 기본정보와 매체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고등교육은 그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사적 변혁의 시기를 맞아 과연 우리의 대학은 세계화의 거센 바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국가경제발전이라는 명분아래 우후죽순처럼 대학을 설립하여 고등교육의 접근 기회를 확대하고 양적 팽창을 도모하면서 ‘신토불이’만을 위한 대학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수행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하여 한편으론 국가경제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고 고등교육의 보편화를 이룩하게 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론 학력?학벌사회화가 가속되어 학력?학벌경쟁이 심화되었고, 또한 지식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대학의 질적 수월성은 낙후성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은 지식강국으로 거듭나야 할 절박한 시점에 처해 있다. 우리의 대학이 정부의 보호 하에 안주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학문의 신토불이’만을 외치던 시대는 지났다. 지식기반사회에 걸맞은 ‘세계적인 대학’으로 부상할 때 이다. 세계화가 곧 우리의 문화와 학문의 정체성을 말살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등교육의 세계화를 ‘학문의 종속화’니 ‘학문의 사대주의’니 하며 ‘학문의 쇄국화’로 매도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판단인지 냉정히 생각해 볼 때이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3-09-19 오후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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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ot 교수님 *^^* 잘 읽었습니다. 200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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