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경영자들은 이 책임을 어떻게 다할 것인가? 이것은 대학을 지원하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가능하다. 사회 구성원이라 함은 대부분 대학과 대학 관계자들과는 무관한 일반 시민들이다. 그러나 대학과 일반 시민 사이에 놓인 이 거리는 대학측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좁힐 필요가 있다. 즉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한 기반 위에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과 수업을 개발해야 한다. 이 때 개발된 프로그램과 강의는 전문 교육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납득 가능한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수행하는 대학 경영자는 극히 드물다. 정확히 말해, 물론 대학측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평범한 남녀 시민들이 대학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으며 대학으로부터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 참을성 있게 들어주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대학은 스스로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고 독자적으로 핵심 정책들을 세우곤 한다. 정작 그들이 듣는다고 할 때는 예의바르게 사람들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지만 한 쪽으로는 바로 흘려보내기 십상이며, 대학에 돌아와서는 아무런 동요없이 다시 일상적으로 대학을 운영한다. 정치인들과는 달리 대학 운영자들은 국민들의 선거에 의해 쫓겨날 일도 없으며 큰 위기가 없는 한 그들의 자리를 고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의 총장이나 학장이 이 조언대로 시민들을 만나보고, 그들이 더 넓은 사회로부터 배운 점을 실제 행정 결정에 활용했다고 치자. 대학의 책임은 거기서 끝날 수 있을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대학 운영자와 직원들은 또 한명의 주인을 섬긴다. 이 주인은 목소리도 없고, 대변인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무시하기가 쉽다. 이 주인은 학문의 학습 과정 그 자체이다. 즉, 과학과 인문학 등 사회와 인간의 문화적 유산의 총집합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사회에나 드물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학을 이끄는 사람들은 대학 운영자로서의 역할을 가질 뿐 아니라 그들 스스로 교육자이기에 마땅히 그래야 한다. 납세자, 기부자들,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이런 논점들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을 줄로 기대를 한다. 그들은 교육자에게서 주요 아이디어나 어떤 사안에 대한 통찰력을 구하지, 결코 요즘 유행하는 학문의 경향에 대한 지적 논설을 찾지는 않는다. 주의할 것은 시민들은 결코 평균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진부하거나 상투적인 말들을 잘 가려낼 줄 알며 소위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허한 속을 가리기 위해 표면적으로 기술적인 용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다.
대학의 이러한 두 번째 책임은 대학과 사회 간의 대화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이 것은 한 쪽에서만 발언하고 요구하는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대화여야 하며, 아무도 의식적으로 알지는 못하더라도 서로의 필요에 대한 상호간에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일반 대중들은 대학의 역할을 철저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본다. 대학의 운영자가 진정한 교육자라면 일반 시민들의 삶에 보통은 영향을 주지 않는 사안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상호간의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만이 최고의 교육과 학문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가 나올 수 있다. 이 중 어느 한쪽이라도 침묵을 지킨다면 대학은 곧 무너지고 말 것이다. 대학 운영자와 직원들은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이러한 대화를 먼저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기에 소통을 유지시키는 책임은 온전히 대학의 몫이다.
대학의 질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학의 리더들이 사회와 서로의 시각과 관점, 생각과 아이디어, 그리고 근본적 가치들에 대해 끊임없이 활발한 의사소통을 벌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