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난 19일의 일요일 밤은 달랐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나의 평상심은 충격으로, 무심함은 감동으로 채워졌고 이 시간에 채널을 뒤적이는 내 습관이 처음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갯벌, 그 후 10년>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한 편을 우연찮게 마주한 덕분이다.
이 프로그램의 모태는 10년 전 갯벌의 중요성을 알리면서 이미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갯벌은 살아있다>라고 한다. 갯벌 1밀리미터가 형성되기까지 1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하니 <갯벌, 그 후 10년>은 갯벌 1센티미터의 관찰일기인 셈이다. 9개월에 걸쳐 촬영한 220개의 테이프에서 2시간 가량의 분량으로 고르고 고른 화면에다 때로는 경쾌한 음악을, 때로는 근엄한 나래이션을 덧씌운 이 프로그램이 전한 메시지는 선명했다. 4백여 종의 생명체가 서식하면서 육지에서 밀려든 오염물질을 걸러주고 해일과 홍수로부터 육지를 보호해주는 갯벌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한 생명의 공간이자 역사라는 것이다.
<갯벌, 그 후 10년>의 미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흔히 자연 다큐멘터리는 환경과 생명의 신비를 쫓고 그 흔적을 기록하는 ‘설명문’의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정치성을 가미한 일종의 ‘논설문’ 형태를 차용하고 있기도 하다. 5천년의 장구한 세월을 거쳐 평균 5미터 깊이로 조성된 갯벌이 밀어붙이기식 개발 논리로 한 순간에 파괴되는 현실에 일침을 놓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지금 새만금 간척 사업을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이 대목에 이르자 상념은 불현듯 공동체의 현안을 다루는 방송의 역할로 이어졌다. 그간 방송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공공의 의제로 부각시키거나 기껏해야 이에 관한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단순 중개하는 것을 주요한 임무로 삼았다. 객관성이니 공정성이니 하는 추상적 원리들이 중시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형식적 합의를 적당히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는 방송이 여기서 그치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문제를 해석하고 해결방안까지 제시하면 어떨까.
이 참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데 특정한 장르에만 매몰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최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송된 한 드라마가 호주제 폐지에 관한 사회적 여론을 비등케 한 적이 있다. 딱딱한 보도나 교양프로그램만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부각시키는데 역부족이라면 드라마를 통해 여론을 환기하고 토크쇼를 통해서 대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포맷이 개발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방송은 일차적으로 공공의제를 다루는데 충실해야 한다. 이에 관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시도는 자칫 방송이 빠지기 쉬운 엘리트주의나 대중 추수주의를 피하면서 혁신을 추구하는 관건이다. 그리고 이 길은 과거 파행을 거듭했던 방송의 사명을 곧추세우는 첩경이다. 단추는 끼워지기 시작했는데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발목잡기는 오늘도 여전하다. 송두율 교수 미화 시비로부터 시작된 공영방송 때리기는 어느덧 KBS 수신료 분리징수란 정치공세로 옮아갔다. 사회의 이익을 위해 갯벌 이전에 방송을 지키는 일이 시급한 형국이다. <갯벌, 그 후 10년>은 이렇게 우리가 보듬어야 할 많은 것들을 되새기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