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은 살벌한 경쟁 속에서 쉴 틈이 없고, 여의도동 1번지는 너무 더럽고, 세종로 1번지는 하와이 망명 비명횡사 가족들의 감옥행등으로 꿈 자리가 가장 사납고, 인기직은 너무 고달프고 단명한데 반하여 교수직은 자기가 원하는 공부하고 제자를 길러내는 즐거움에다 적절한 보수가 따르며, 스트레스 받는 근심걱정이 가장 적고, 또 가장 오래 머물 수 있고, 또 늙을수록 권위가 붙고, 제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잘만 하면 예쁜 제자들이 늘 꽃을 들고 찾아 와 주는 자리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조건은 방학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땅의 최고 재벌도 권력자도 인기 스타도 1년에 두 번씩 몇 개월을 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교수들은 이 기간에 부부동반으로 적어도 10일 또는 한달간은 해외여행을 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나 재벌 기업 총수는 나라가 망하거나 기업이 무너질 각오가 아닌 이상 그런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학생들도 그렇다. 학생들이야 말로 2개월 이상을 완전히 자기만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
교수나 학생들이 누리는 이런 방학은 다른 직장인들이 일주일이나 열흘쯤 쉬게 되는 휴가와는 다르다. 그냥 쉰다고 하기에는 너무 길기 때문이다.
한달 이상을 일상적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언가 한 가지를 마음 먹고 해 낼 수 있다. 열흘은 너무 짧지만 한달 이상이면 교수들은 책 한 권을 써 낼 수 있다. 자기 전공 분야를 일반 대중에게 쉽게 전해주는 책 한 권을 써내는 것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연구도 되고 사회적인 기여도 되고 돈도 되고 잘 하면 인기도 얻으며 또 하나의 신나는 세상이 열린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의 먼 항해 끝에 입항한 배처럼 방학 기간은 새 출범을 위한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도 되어야겠지만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반성과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는 것도 매우 긴요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가서 “나”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우리 국가와 세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확대해 나가는 지도적 지식인으로의 변화는 어떨까?
개미는 근심할 새가 없다는 말처럼 살기에 바쁜 보통 사람들은 자기 성찰의 시간도 없으니 나라 걱정도 제대로 할 틈이 없다. 그들은 다만 언론의 선동대로 그것이 자기 국가관이고 바른 가치관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올바른 지식과 판단력과 양심을 갖고 이 더러워진 나라를 근심할 것인가?
이런 점에서 우리는 좀더 격상된 지식인 집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위해서도 방학이 필요하다. 맛 좋은 술도 맛좋은 홍시도 제대로 익으려면 그만큼 숙성할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들의 방학도 보다 숙성한 무엇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으로 쓰여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