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홈 > 뉴스 > 대학행정

목록
프린트 스크랩
'盧의 남자' 중도하차..'레임덕'
정권 핵심실세..논문파문으로 낙마
'논문 논란'으로 거센 사퇴 압박을 받아온 참여정부의 핵심실세 김병준(金秉準)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결국 권력의 무대 뒤로 물러났다.

김 부총리의 퇴진은 일개 국무위원의 불운이나 불명예 차원을 넘어 노무현(盧武鉉) 정부 후반기 국정운영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주는 정권차원의 부담이 될 전망이다.

김 부총리가 부동산 정책 등 참여정부 개혁정책의 상징으로 불려온 노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이었던만큼 그의 중도하차는 '개혁의 낙마'라는 정치적 메시지로 읽힐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청간 갈등이 다시 노정됐고 인사검증 시스템 미비 등 인사정책 문제가 다시 도마위에 오르게 된 점도 청와대로서는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

사의를 표명한 김 부총리는 '왕의 남자'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릴 정도로 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국정에 충실히 구현해 온 행동파 핵심 브레인.

대통령직인수위 정무분과 간사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을 거친 그는 지난 5월 청와대 정책실장에서 퇴진할 때까지 줄곧 지근거리에서 노 대통령을 보좌하며 호흡을 같이 해왔다. 정책면에서 노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할 정도로 '막강파워' 그 자체였다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노 대통령의 김 부총리에 대한 각별한 신뢰는 19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함께 일했던 인연과 함께 냉철한 판단력과 강단있는 추진력이 노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우선 그는 1990년대 초 노 대통령이 총선에서 낙선하고 와신상담했던 시절 인연을 맺은뒤 2002년 대선 때에는 '노출'을 꺼리던 대부분 학자들과 달리 거의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내놓고 노 대통령을 밀었다.

이런 그에 대해 노 대통령은 자신의 자문학자 그룹을 소개할 때마다 "김병준 교수님"을 가장 먼저 앞세웠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청와대에 입성한 김 부총리는 "헌법처럼 바꾸기 힘든 부동산 정책을 만들겠다"거나 "세금폭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과감한 정책추진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이런 신뢰관계 때문인지 참여정부 출범이후 행자부장관, 감사원장, 청와대 비서실장 등 개각때마다 그의 이름이 거론됐다. 하지만 대통령 '코드학자'의 상징이란 이유로 세간의 입방아와 정치권의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역설적 현상도 벌어졌다.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이었던 지난 3월 이해찬(李海瓚) 총리의 사퇴 후 강력한 후임 총리로 거론됐지만 5.31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부담을 의식한 여당의 거부감 표출로 무산된 것은 단적인 예.

김 부총리가 교육수장에서 낙마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노 대통령은 김 부총리만큼 참여정부의 국정철학과 교육개혁 의지에 정통한 사람이 없다며 인선을 강행했지만, 논문 논란이 터지자 이번에도 여당이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 부총리의 퇴진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우선 '믿을 사람' 위주로 중용해온 노 대통령의 인사방식에 일정 부분 변화가 불가피해질 개연성이 없지않다. 또한 통치철학을 공유하는 측근들을 전면에 배치해 우리사회의 미래과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 개혁정책을 과단성 있게 추진하려던 노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 구상에도 차질이 빚어질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6-08-02 오전 11:12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목록
프린트 스크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1

최신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