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羽化). 번데기에서 나비로의 느닷없는 변모, 변신. 하나둘 깃이 돋아 화려한 날개를 이루고 그것으로 하여 스르르 몸을 띄우는, 그리하여 마침내 창공을 나는, 저 눈부신 비행. 대학 캠퍼스에 보내는 세상의 시선은 온통 부러움으로 가득하다. 하여 대학 밖에서는 ‘부활’이라는 이름의 선물을 이리 따로 준비했다.
# 꿈의 부활 혹은 유토피아로의 미끄러짐
- 변관식 회고전 ‘소정, 길에서 무릉도원을 보다’
그림이란 물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여전히 그림은 그림이고 나는 나이다. 그림과 내가 하나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과 나 사이에는 엄연히 거리 혹은 공간이라는 질서가 존재하고 있으니.
원근법이란 것이 어쩌면 이러한 논리의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주체와 대상간의 명확한 구분. 세상 이치란 이것과 저것의 구분이 명확한 게 좋다. 얼마 살아보진 않았지만, 그게 편하다.
그런데 우리네 조상님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과 저것의 경계가 모호하고 심지어 그것 자체에 쑥 들어가 버리기 일쑤다. 그림을 그리면 그림 속 풍경에 빠져 철퍼덕 엎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울컥, 금새 뭔가를 토해낼 것만 같은 힘찬 기세의 금강산 기봉과 암벽, 이 땅 들녘의 질박한 풍경, 밭길 사이 훠어이 훠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갓 쓴 노인네….
붓을 잡은 우리네 어르신들은 언제나 그림 밖에 있지 않았다. 저 갓 쓴 노인네. 주체가 대상과 일체를 이루는,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을 그리는 작업. 동양화의 정신은 그렇게 ‘하얀 뼈대’를 세웠고, 그것을 지금 우리는 ‘진경(眞景)’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청전 이상범과 더불어 근대 한국화단의 쌍벽인 소정 변관식(1899~1976). 우리 산하의 기운을 담은 진경산수화에서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이래 가장 출중한 화풍을 이루었다는 평이다.
작가가 졸한지 30주기가 되는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초창기 습작시절부터 70년대 말년까지 대작, 소품 80점을 비롯해 드로잉 15점과 평소 쓰던 전각 작품 60점이 망라됐다. 이를 작가의 연대기에 따라 ‘길 떠나기’, ‘길을 묻다’, ‘무릉도원을 보다’ 등 3부분으로 갈래를 나눴다.
꿈의 부활 혹은 유토피아로의 미끄러짐. 그 입구에는 ‘소정, 길에서 무릉도원을 보다’라는 제목이 걸려있다. 5월 7일까지 덕수궁미술관. 2022-0613.
# 시간을 기억하거나 아니면 이겨내거나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 ‘날 보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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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 ‘살인의 추억’ 등 여러 흥행작의 공통점은 하나다.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점. 특히 ‘살인의 추억’이 이러한 흐름의 시발점이었다.
‘살인의 추억’의 원작 연극 ‘날 보러와요’(작?연출 김광림)가 다시 무대에 올려진다. 초연 당시의 주요 멤버들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최용민(김반장), 권해효(김형사), 김내하(조형사), 류태호(용의자) 등이 관객뿐 아니라 10년의 세월까지도 간단히 제압해 버린다. 극단 연우무대가 공연을 시작한 것이 바로 1996년이다.
그때 그 시각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배우들만의 몫일까. 마침, 화성 살인 사건의 마지막이 된 10차(91년 4월 3일) 사건의 공소시효(15년)가 공연 기간 도중인 4월 2일 만료될 예정이다. 그렇다고 굳이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 연극은 웃긴다. 오는 17일부터 내달 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1544-5955.
# 되살아오는, 저 푸르른, 치명적 매혹
- 엄태웅 주연의 ‘부활’ 감독판 DVD
“사단은 무릇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니, 세치 혀를 조심하라. 그저 본디 있는 그것에 충실하라.” 공자왈 맹자왈 하는, 빛 바랜 책 어디쯤에 얹혀있는 글귀인가. 아니면 옛 선사의 가르침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인가. 하지만 이 또한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 것일 터, 구두선(口頭禪)이다. 때문에 KBS 드라마 ‘부활’(극본 김지우, 연출 박찬홍)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마니아들 사이에는 게시물 끝에 다음과 같은 인사말이 따라다닌다. “닥치고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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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에는 긴말이 필요치 않다. 지난해 열혈 마니아인 ‘부활패닉’을 낳았던 드라마. 쌍둥이 형제의 복수극으로 ‘엄포스’ 엄태웅과 한지민 커플이 명연을 펼친다. ‘원의 끝은 곧 시작이다’는 원의 법칙을 촘촘히 선보인다. 이번 DVD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화면해설기능이 추가된 점이 이채롭다.
# 35년이 2백50년의 세월을 거뜬히 위로하다
- 줄이은 ‘모차르트 포에버’ 프로젝트
이름만으로도 예술 그 자체인 이들이 몇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년 그가 세상에 왔다. 1791년 그가 세상을 떠났다. 이 사이에 존재하는 부박한 시간 30여 년. 이 시간이 이후 2백50년을 풍성하게 위로한다. 아울러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컴필레이션 음반 ‘모차르트 어 셀러브레이션’이 모차르트 탄생 2백50주년 기념 특별음반으로 소니비엠지에서 출시됐다. 모차르트의 명곡 36곡을 세 장의 CD에 나눠 담았다.
EMI클래식은 모차르트 곡 1백곡을 모은 ‘베스트 모차르트 100’을 내놨다. ‘피가로의 결혼’을 비롯해 관현악과 실내악, 독주곡, 오페라, 합창, 종교음악 등이 총망라됐다.
유니버설 뮤직의 도이체 그라모폰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가 직접 선곡한 모차르트 3부작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 3중주’ 발매에 이어 올 하반기 4장의 CD로 구성된 ‘바이올린 소나타집’도 선보일 예정.
# 한들한들 이슬을 머금었네, 저 풀꽃!
- 독특한 영상 시집 ‘겨울날’ 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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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은 일본의 전통 문학장르인 렌쿠(連句)를 오롯이 스크린에 옮겨 새롭게 변주했던 화제작. 2003년 일본 미디어예술제 대상을 수상하고 그 여세를 몰아 바로 이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걸었다.
렌쿠는 마치 끝말잇기를 하듯, 몇 사람이 짧은 시를 이어 읊어나가는 독특한 형식의 시문학 장르. ‘겨울날’ 역시 1분 내외의 애니메이션 36편을 시를 이어가듯 내용을 엮어나가고 있다. 17세기 인물인 마쓰오 바쇼가 쓴 동명 시집이 원작.
인형 애니메이션의 대가 가와모토 기하치로를 비롯해 러시아 작가주의 애니메이션 작가 유리 노르슈테인, ‘추억을 방울방울’로 유명한 지브리 스튜디오 다카하타 이사오, 인형 애니메이션으로 저명한 캐나다의 코 회드만 등 동?서양 애니메이터 35명을 불러모아 애니메이션 제작사 이매지카 엔터테인먼트가 3년간 작업했다. 일본어로 돼 있으며 한글자막이 지원된다.
# 유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부드러워 보이지만 거친
- 델리스파이스 신보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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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스파이스’의 새로운 앨범 ‘봄봄(Bombom)'은 2003년 5집 발표 이후 정확히 3년만에 선보이는 것이다.
‘언니네 이발관’과 더불어 이른바 ‘인디’쪽의 맏형격임을 자임하며 그간 모던록을 이끌어왔던 델리 스파이스. 올해로 벌써 결성 11년째다. ‘봄봄’은 여섯 번째 앨범이 되는 셈이다.
언젠가 음악평론가 신현준은 한 일간지에 델리 스파이스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들의 음악은 유약해 보이지만 강인했고, 부드러워 보였지만 거칠었다”
이번에도 변함이 없다. 때론 자유롭게 때론 차가웁게. 아슬아슬한 봄의 온기가 묻어나는 첫 곡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도합 12곡이 빼곡이 수록돼 있다.
봄날.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있으면, 땅 위의 모든 살아 숨쉬는 것들이 죄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느낌. 차우차우,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승호 객원기자 news@un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