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이후 불거진 주류ㆍ비주류 논쟁에서부터 386세대의 등장으로 인한 세대논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이른바 '권력이동'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권력의 향방이 '냉전ㆍ산업화' 세력에서 '광주ㆍ민주화' 세력으로 점차 옮겨갔다는 것은 이미 새로운 분석도 아니다. 정권을 잡은 사회ㆍ정치 세력 뿐 아니라, 각 문화적 영역에서도 '상징권력'의 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현실정치에서 권력을 장악한 측에서는 변화를 시대적 흐름으로 여기는 반면, 권력을 놓은 측에서는 권력교체의 일시적 성격을 강조한다. 권력을 잡은 자와 놓은 자와의 갈등은 숙명적이다.
이렇듯 갈등과 공존이 복잡하게 존재하는 권력의 이동 양상을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분석, '한국사회 권력이동'(굿인포메이션)을 펴냈다.
지난해 한국청년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심포지엄 '한국사회의 권력이동'을 기초로 각 분야 학자들이 연구해 온 한국사회의 '파워그룹'의 내용을 보강, 권력이동의 논의를 정치ㆍ사회ㆍ문화 등 각 영역으로 확대한다.
고려대 이남호 교수(국어교육학)는 한국의 '상징권력' 이동 양상을 살폈다. '상징권력'이란 우리의 지식, 취향, 생활양식 등을 규정하면서 우리 대부분이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고 동화되어 살아가는 일종의 사회문화적 질서를 뜻한다. 이러한 상징권력의 변화는 단순한 생활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변화를 포함한다.
이념 토론의 장이었던 동아리는 인터넷 상에서 인맥을 쌓는 '싸이월드'로, 두툼한 지식의 상징 백과사전은 간편한 생활정보로 가득한 지식검색 사이트로, 내 집 마련의 꿈이 투영됐던 주택복권은 벼락부자의 상징 '로또'로, 그저 물질적으로 윤택한 삶을 의미했던 '부자'는 행복과 건강을 추구하는 '웰빙'으로 상징권력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
인터넷과 싸이월드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N세대들은 넓은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빠져나와 어두운 PC방과 같은 '골방'으로 들어갔다. 예전에는 내 집 마련을 위해서 주택복권을 샀다면, 이제는 인생을 단번에 역전시키기 위해 '로또'를 산다.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며 합리적인 방식으로 살자는 인식에서 출발한 웰빙문화는 그러나 소비 트렌드에 불과하거나 극히 이기적이고 사치스런 편안함에 그치고 있다. 이 교수는 웰빙에 대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격이니 진정한 고급문화가 되기엔 아직 멀었다"고 쓴소리를 덧붙인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대학생과 지식인의 소멸, 전통과 지속성에 대한 거부, 고급문화의 쇠퇴, 감각과 우연성의 증대, 보편성의 상실, 인문학의 몰락과 경영학의 번성, 사회적 공론장의 변동 등의 배경이 자리한다. 이 교수는 "이런 변화는 예전에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고 지적한다.
상징권력 말고, 지식권력의 양상은 어떨까. 광주민중항쟁을 배경으로 등장한 386세력을 '5월의 지식권력'이라 비판한 바 있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전상인 교수는 글 '지식권력의 이동'에서 386세대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다.
"'광주ㆍ민주화' 지식 레짐이 '냉전ㆍ산업화' 지식 레짐을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분명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전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모습의 지식권력 이동에는 아쉬운 측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가 "역사와 국민의 이름으로 걱정하는 것"은 바로 현재의 진보적 정치권력 및 지식권력의 성공이 아닌 '실패'.
그는 나아가 '광주ㆍ민주화' 지식 레짐이 반(反)지성주의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하고, 학문이 이른바 중우정치와 공존하고 양립하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현실로 가능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외에도 책에는 한국의 NGO, 미디어 분야의 권력이동과, 중국ㆍ미국 등지의 권력이동 양상도 함께 다뤄진다. 이남호ㆍ전상인ㆍ박길성ㆍ한준 외 지음. 278쪽. 1만4천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