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 출간 이후 한국 사회는 줄곧 ‘교양’ 붐이다. 적어도 출판계만은 분명 그렇다.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 <일반 교양 강좌>, <21세기의 교양>, <교양으로 읽는 17인의 필로소피>, <교양인의 책읽기>, <7인 7색 21세기를 바꾼 교양>, <한국의 교양을 읽다>,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이야기> 등등. 얼핏 살펴봐도 한 두 권이 아니다. 죄다 ‘골치 아픈 책’들 뿐이다.
하지만 ‘교양’있게 교양이란 단어를 책제목에서 빠뜨리지 않은 점은 이 책들이 한결같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다.
<교양>이 과연 어떤 책이기에, 이처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까지 치닫는 것일까?
이 책의 원산지는 독일이다. 독일은 문학과 철학, 일단 이 두 분야만 놓고봐도 괴테와 마르크스라는 두 거인이 태산준령과도 같이 버티고 선 나라다.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3천년의 문명사를 ‘성찰적 지식’이란 잣대 아래 새롭게 총망라했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 이 책 앞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책에 ‘원산지 분위기’가 오롯이 담긴 까닭이다.
그렇다고 유럽의 성벽처럼 그저 딱딱하기 만한 책도 아니다. 우선 교양을 정의하는 문구만 봐도 그렇다. 가지각색이다. “이 문장의 독자는 이 문장을 읽는 시간 동안에만 존재한다. 고로, 교양은 늘 채우고 있어야만 하는 지식의 보고가 아니다. 단지, 하나의 문장을 읽을 때는 알아야 하는, 그런 것이다.”,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쉬 잊어버리듯이, 무엇을 읽었는지도 곧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것들이 정신과 육체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은 잊지 않고 있다. 교양은 ‘튀지 않는’ 능력이다.” 딱딱하지 않은 대신 도도한 것은 사실이다.
2001년 11월, 우리에게 소개된 이 책은 역사를 시작으로 문학, 언어, 미술, 음악, 철학, 건축, 성담론 등 유럽 문명 핵심을 죄다 아우르고 있다. 기존의 단어 가운데서는 ‘백과사전’이란 말이 이 책에 근접할 수 있겠다.
반면, 2004년 11월에 나온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이하 <교양사전>)은 슈바니츠류의 교양 서적 붐에 나름의 제동을 거는 책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양이 필요한 이유는 ‘무지 타파’가 아니라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함이란 주장이다.
<교양>이 ‘유럽 문명에 관한 박물지'라면 <교양사전>은 우리의 일상 생활 단면 하나하나를 차트별로 세세히 정리하고 있는 셈이다. 교양이란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그만큼 읽기가 편하다.
그렇다고 예의 강준만 교수 책과 같이 ‘독설의 날’이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열풍을 비롯해 댓글 저널리즘, 디지털 치매 등 대중문화 현상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대중문화의 겉과 속> 시리즈물과도 맞닿아 있는 느낌이다.
가령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것을 인용한 대목이 그렇다. “시는 슬픔에 관한 것이요, 정치란 불평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단 강만준 교수의 부연설명은 정교하면서도 유쾌함에 가깝다. 싸움박질만 일삼는 정치권에 상생을 주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서로 불평불만을 갖고 부딪히다보면 ‘조용한 날’이란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 당연지사.
특히 이상현 녹색미래 사무처장의 멘트를 뽑아낸 것은 가히 압권이다. “얼마전 유엔에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질문은 딱 한가지. <지금 다른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식량 부족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면 정직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설문은 ‘엄청나게’ 실패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식량’이 뭔지 몰랐고, 서유럽에서는 ‘부족’이란 단어를 몰랐다.
동유럽에서는 ‘의견’의 뜻을 몰랐고, 중동에서는 ‘해결책’이 뭔지 몰랐다. 남미에서는 ‘부탁’이라는 것을 몰랐고, 아시아에서는 ‘정직한’이란 뜻을 몰랐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다른 나라들’이란 게 뭔지 몰랐다.”
이 두 권의 책이 ‘우리 사회의 교양 없음'을 격파하는 유쾌한 교양서라고는 단언하기 힘들지만, 무엇인가를 격파할 수 있을 정도의 ‘단단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두꺼운 만큼 충만하다.
“세월보다 더 치열하게 살다”
- 두 원로가 걷어올린 융숭한 사유의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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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백낙청 지음, 창비, 2만5천원 |
배가 흔들릴 때마다 닻은 더 아래로 박히는 법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닻은 배의 중심을 잡아준다. 그래서 그랬을까. 두 학자의 행보에 더욱 눈길이 간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 이래 40년 동안 민족문학 진영의 수장 역할을 해왔다.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이다. 특히 지난해 6?15 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측위원장을 맡는 등 남북 교류활동의 최일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 펴낸 평론집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은 백낙청 교수의 이러한 실천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1978년 <민족문학과 세계문학1> 이후 줄기차게 주창해온 ‘백낙청표 민족문학론’의 연장인 동시에 평화와 통일의 길목에서 온몸으로 작성하는 문학노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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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의 도전 철학의 응전> 박이문 지음, 생각의나무, 2만2천원. |
반면 박이문 연세대 특별초빙교수는 ‘조용히’ 사유한다. <과학의 도전 철학의 응전>은 이러한 박이문 교수의 철학과 과학에 관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지난 35년간 곰삭혀온 사유의 보따리인 만큼, 바람이 물 위를 스칠 때 퍼져나가는 물무늬와 같은 아름다움은 한 글자 한 구절의 기특함 속에 있지 아니하다(風行水上之文 決不在於一字一句之奇)는 이탁오의 글귀가 게중 어울릴 듯. 노철학자는 ‘윤리와 철학이 없는 과학은 재앙’이라는 화두를 툭 던져놓고 훠어이 훠이 다시 갈 길을 갈 뿐이다. 후학들은 그저 그 길에 젖어 걸음을 옮길 따름이다.
● 대학가 신간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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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란 무엇인가’
김현식 한양대 교수가 쓴 편지글 형식의 독특한 역사이론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E.H. 카에 대한 색다른 접근법이다. 그런 까닭에 ‘E.H. 카와 역사의 벗에게 띄우는 15통의 편지’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휴머니스트, 1만3천원.
*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가 그간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것을 한데 모았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 문제에 대한 관심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화두는 여남평등(女男平等). 뿌리 깊은 가부장주의와 군대문화 등을 다시 한번 공론의 장으로 불러내고 있다. 또하나의문화, 9천원.
* 번역은 반역인가
박상익 우석대 교수의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대학원생들에게 번역 하청을 떠맡기고도 떳떳이 활동하는 대학 교수, 오역과 비문으로 얼룩진 번역서가 판치는 출판계 등 지식인사회의 번역 경시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푸른역사, 1만2천원.
* 새정치 문화는 정말로 존재하는가
테리 니콜라스 클라크 미국 시카코대 교수가 37개국 5백50명의 연구자가 함께 14년째 진행하고 있는 ‘긴축재정과 도시혁신(FAUI) 프로젝트’의 결과물. 기존의 낡은 정치의 틀이 깨지고 있음을 사회과학적으로 밝힌 역작이다. 책을 옮긴 이승종 서울대 교수와 장원호 서울시립대 교수 역시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다. 성균관대출판부, 1만5천원.
*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도쿄케이자이대 교수의 정치?사회?예술에 대한 산문집.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지만 이 책에서는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 혹은 그들의 후손을 가리킨다. 자신이 재일조선인이기 때문이다. 김혜신 옮김, 돌베개, 1만2천원.
이승호 객원기자news@un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