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마주한 고궁, 가슴에 불을 품고 있지만 그 자태는 한껏 단정하다. 봄 햇살이, 차라리 눈부시다. 이제, 켜켜이 쌓여온 세월이 다시금 아름다운 나이테 하나를 더한다. 내가 지금 이 곳, 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빈궁마마다~
● 경복궁
>>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 ‘궁’과 ‘궁궐’은 다르다
‘궁’은 TV 드라마 제목이고 ‘궁궐’은 우리가 흔히 고궁이라 부르고 또 익히 알고 있는 그 곳이다. 아, 썰렁.
좌우당간, 서울의 5대 궁궐은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이다.
이 다섯 궁궐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경복궁. 서울?수도권 지하철 노선도에 나와 있는 주홍색 라인, 서울을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가로지르는 거대 대각선, 지하철 3호선, 거기에도 나와있다. 경복궁역. 역 이름에 궁궐 이름을 가져다붙인 경우는, 일단 우리나라 내에는 이 경우 외에는 없다. 단언한다. 불끈!
기초학습 단계. 궁은 간단히 말해, 왕족이 거처하던 곳이다. 그러니 왕 뿐만 아니라 왕태후, 왕비, 태자 등이 머무는 곳에는 죄다 붙는 이름이다. ‘실’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한다. 반면 궁궐은 다르다.
궁궐은 궁(宮)과 궐(闕)을 합친 말이다. 궁은 설명한 바 그대로이고, 궐은 한마디로 망루. 집이 있으면 문이 있기 마련이고, 궁처럼 규모가 크고 웅장한 건물을 짓는 마당에 그에 비례해 큰 문이 하나 혹은 여러 개 세우는 것은 당연지사. 그 문 위에 마련해두는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빈 공간을 궐이라 하는 것이다. 결국, 궁궐은 집과 문을 합친, 한 세트를 가리키는 셈이다. ‘체급’ 자체가 다른 용어들이다.
# 궁궐은 왜 여러 개?
조선시대에 지금처럼 행정도시건설특별법이 있어 여기저기에 사업을 추진한 것도 아닐 터인데 어찌 궁궐이 여러 개일까.
답은 간단하다. 태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경복궁을 지었는데, 이후 여러 임금들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창덕궁?창경궁?덕수궁 등을 하나씩 또 만든 것이다. 학교 ‘짱’ 자리 하나에도 사연이 구구절절한데 하물며 한 나라의 왕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큰일을 어찌 가벼이 입에 올릴까. 흠흠.
그랬거나말거나 일단, 경복궁이 역대 정궐(正闕)임은 분명하다. 자식으로 놓고 보면 맏이가 되는 셈이다. 태조가 ‘내집 짓듯이 꼼꼼하게’ 경복궁을 짓되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부터 세우라 엄히 영을 내렸던 것이다. 여기서 상식 시험에 가끔 등장하는 ‘종묘사직(宗廟社稷)’이 나온다.
종묘는 조상들을 모시는 곳이니 이른바 왕실의 사당이다. 사직단은 백성들이 배불리 잘 살수 있도록 빌었던 곳이다. 토지신 ‘사(社)’와 곡식신 ‘직(稷)’에게 말이다. 그러니 경복궁은 우사직 좌종묘의 격려 속에 처음부터 뼈대있는 내력을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박력 있게 간직해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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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가운데 ‘큰형님’ 격인 경복궁은 1395년에 건축된 것이다. 건물들은 임진왜란과 일제치하를 거치면서 불타고 훼손됐으나 지금은 대부분 원상복구 되었다.
왕이 집무를 보던 사정전을 비롯해 외국 사신을 맞거나 중대한 의식을 치르던 근정전,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던 경회루, 우리나라 최초로 발전기를 설치했던 향원정 등이 그렇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왕과 왕비의 침전이다. 자선당은 왕세자가 생활하던 공간이다.
이제, 심화학습 단계. 궁궐에는 내전(內殿)과 외전(外殿)이 있다.
주자학이 득세했던 조선시대. 대명률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엄격했으니, 안방과 사랑방 같은 개념이었을까. 궁궐이라고 딱히 달랐을까 싶기도 하지만, 답은 ‘아니다’ 올시다. 지금으로 보면 집과 사무실로 구분되는 것에 오히려 더 가깝겠다.
내전은 왕을 비롯해 왕비, 세자 등 이른바 왕의 가족들이 생활하던 공간을 가리킨다. 고로 강녕전, 교태전, 자경전, 자선당 등등 이 모두가 내전이다.
반면 외전은 왕이 나랏일을 돌보는 곳이다. 근정전, 사정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 까닭에 외전은 궁궐 앞쪽에 포진한 반면 내전은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공과 사 가운데 언제나 공이 앞이다.
# 더불어 둘러볼 곳
조선시대 서민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보여주는 국립민속박물관과 조선 왕실의 유물 4만여 점이 전시된 국립고궁박물관은 필수 코스.
청와대 앞길을 지나면 역대 대통령이 외국에서 받은 선물을 전시한 효자동사랑방이 위치하고 있다. 청와대 서남쪽에 자리잡은 칠궁은 정궁의 출생이 아닌 임금이 그 생모를 봉사하던 사당이다. 청와대 관람을 미리 신청하면 이곳을 둘러볼 수 있다.
궁궐 나들이 마무리는 작설차 한잔으로도 쉬 풍성해지는 개다리소반의 풍류, 인사동 그 찻집이 제격이다.
● 종묘.창경궁.창덕궁
>> 종로3가역 1호선 11번, 3호선 8번, 5호선 8번 출구
종묘는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종묘에서 봉행했던 대제는 예로부터 일년에 다섯 번 정기적으로 치러졌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일년에 한 번 뿐이다. 종묘제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때는 5월 첫째 일요일에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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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창덕궁은 현존하는 궁궐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경우. 창덕궁 후원은 ‘비원(秘苑)’이란 별칭답게 오랫동안 사람을 들이지 않았다. 9만여 평에 이르는 이 곳은 한국적 조경양식이 돋보이는 곳으로 울창한 숲에는 6개의 연못과 28개의 정자가 세워져 있다. 종묘에 이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경궁은 1909년에 일제가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면서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원형이 크게 훼손되기도 했다.
● 덕수궁.경희궁
>> 시청역 1호선 2번, 2호선 12번 출구
덕수궁은 여느 궁궐과는 사뭇 다르다. 여느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원을 연상케까지 한다. 다만 일부 전각만이 이 곳이 궁궐이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과 전통 목조건물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되려 눈길을 끄는 것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펼쳐지는 왕궁수문장 교대 및 수위의식. 화려하고 품위 있는 이 전통 궁중문화 재현행사는 하루 3차례 펼쳐진다. 이어지는 순라의식은 덕수궁을 출발, 숭례문까지 이어진다.
덕수궁은 한말 풍운의 현장이다. 아관파천의 장소였던 구 러시아공사관을 비롯해 을사조약이 체결됐던 중명전 등이 그것을 증거한다. 덕수궁만큼이나 철저하게 유린당한 궁궐도 드물다.
옛 경희궁터에 자리 잡은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해 덕수궁미술관, 돌담길 등은 연인들의 문화산책 코스로 인기.
● 운현궁.북촌
>> 3호선 안국역 4번, 5호선 종로3가역 4번 출구
운현궁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거처하며 10년간 섭정을 했던 곳이다.
그 높이가 하늘에 불과 한자 다섯치 밖에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건물 규모가 거대했다는 노락당을 비롯해 이로당, 아재당, 노안당, 영화루 등이 궁을 채웠다고 한다. 현재는 일부만이 복원돼 있다.
운현궁은 고종과 명성황후가 국혼을 올린 현장이기도 하다. 4월과 10월 가례 가운데 별궁에 사신을 보내 왕비를 책봉하는 비수책의식과 국왕이 몸소 나가 왕비를 맞아 들여 대궐로 돌아오는 친영례의식을 재현한다.
가회동 북촌은 조선시대 육조관아에 근무하던 조정 대신들과 권문세가들이 모여 살던 곳. 아직도 9백여 채의 한옥들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1천여 점의 민속자료를 소장한 가회박물관을 비롯해 전통 공방들이 오순도순 모여있다.
이승호 객원기자 news@un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