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표정부터가 한가롭다. 여권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학법에 대한 재개정이라는 말 자체가 가당치 않다는 표정이다. 그것을 다시 하려고 정치적인 출혈을 했겠느냐는 식으로 되묻고 있다. 돌아가는 정국상황 자체도 그리 한가하지 않다.
그런 분위기는 이미 몇몇 신임장관에 대한 여야 청문회과정에서 극명하게 감지된바 있다. 유시민씨를 필두로 장관 후보 지명자들 하나하나를 향해 어쩌면 그들의 삶에 있어서 천추에 한이 될 정도로 정치적인 굴욕과 창피를 안긴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분풀이로 일단 상황을 종료시킨 것 같았다.
여권은 이번 사학법 개정에서 전리품을 2가지나 쟁취했다. 그것은 사학의 감시견을 이사회에 심어두는 일과 그것을 정치적으로 쟁점화 시킬 수 있는 정치적 교두보를 확보한 일이다. 그 2가지 핵심사항을 사학에게 되돌려 주면 사학법 개정은 처음부터 할 필요조차 없던 일이었다.
그 하나는 개방형 이사제 도입의 조항으로 굳혀진바 있다. 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을 한 교직원의 면직권한을 재단에게 박탈해버린 일이다. 이사회 구성상 친족이사 수를 줄인다던가, 교장의 임기를 어떻게 한다든가 하는 조항들은 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지않다.
그런 것들은 사학법의 개정이 요구될 때마다 늘 수정과 재수정이 있었던 조항 들이었다. 이제 타천형 개방형 이사제 도입으로 인해 재단들의 마음가짐은 그 어떻든 간에 달라지게 되었다. 개별 사학에 대해 이런 저런 문제들이 제기될 가능성은 그 만큼 더 커졌다. 타천의 이사들이 그일을 잘 해낼 것이다.
그들은 감시견들이기 때문이다. 사안들이 제기되면 그것이 학내문제로 비화되는 것은 순시간이다. 문제들이 학내에서 노동운동으로 비화되어도 그것을 주도한 사람들은 면직대상의 논의에도 끼일 수 없다. 이 모두가 개정 사학법의 정치적 위력이 드러나게 만들고 있다.
개정 사학법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논의할 시간은 남아있다는 것이 여권의 설명이다. 사학법 개정을 인정한 연후에 시간을 벌라는 강요이다. 사학법 개정이 사학의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라면 그것을 완화시킬 방법을 시행령 제정에서 찾아보라는 것이다. 사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담보해 낼 수 있는 시행령을 만들어 내보라는 정치적 주문이다.
이번의 사학법을 둘러싸고 벌어진 진기한 풍경의 하나가 바로 시행령 개정위의 설치한 일이었다. 시행령 개정위를 설치한 것은 정부의 법령제정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 만큼 이 정권이 국민의 참여를 중시한다는 징표일 수도 있다. 반대로 이번의 사학법은 여권에게 정치적으로 위급했던 사항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학법 시행령에는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차가 반영될 수도 있다. 그런 정치적 견해차를 최대한 반영하는 제도를 협상에 의한 규칙제정이라고 한다. 그것을 위해 시행령개정위원회는 일반적으로 사회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되는 것이 관례이다.
이것도 이번의 시행령과정에서는 이미 무의미해져 버렸다. 협상에 위한 규칙제정을 하려면 시행령개정위의 인적 구성이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되어야 하는데, 이번의 경우는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사학측이 원천적으로 참여를 거부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사학 측의 예견대로, 이제 사학의 타율성을 강조한 개정 사학법은 더욱더 저들의 뜻대로 굳힐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권은 정치권의 면피용 줄다리기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되었다. 사학법 시행령 제정에서도 정치적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일정은 흐르고 있다. 교육부가 3월중으로 시행령개정안에 대해 관계부처 협의와 입법예고를 완료한다. 절차에 따라 5월 말로 시행령을 공포하면 사학법과 시행령들은 7월1일부터 정식으로 발효된다.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에 대한 재 개정안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을 향한 열정은 그 옛날과는 너무 다르다. 그러면서도 사학재단을 향해 누가 그들과 한편인지를 상기해보라는 식이다. 앞으로도 사학 편에 서줄 정치권이 누구일 지를 가슴에 새기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렇게 저들은 여권과 눈 웃음을 주고 받으며 정치적인 교태의 몸놀림을 계속하고 있다. 그 추웠던 빙토도 녹아드는 춘삼월의 봄은 오건만, 사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