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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존여비 망령과 성폭행
이정규 본지 전문위원/ 전 캐나다 센트랄 칼리지 학장
근간에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성폭행 및 성추행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는 불미스럽고 낯 뜨거운 소식을 빈번히 접하고 있다. 성범죄 처벌방안과 청소년 성보호법이 우리 정부와 국회에서 공전을 거듭하는 동안 초등학생 여아 성추행 및 살해사건이 일어나고, 30대 남자가 연쇄 성폭행을 저지르고, 현역 군인이 초등학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 추행하고, 남성 교도관이 여성 재소자를 성폭행하는 인면수심의 부끄러운 일들이 발생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제1야당의 3선 의원으로 중책을 맡고 있던 검사 출신 아무개 국회의원이 소속 일부 당직자들과 모 언론사 일부 임직원들이 가진 심야 술자리에서 언론사 여기자를 성추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한 정언유착의 부적절한 만남과 몰지각한 정치인의 파렴치한 추행으로 인해 이 사건은 정치쟁점화하고 파문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더욱 놀랍고 가당치 않은 것은 술에 취해 음식점 여주인 인줄 알고 성추행을 했다고 실토한 사실이다. 그가 궁여지책으로 변명삼아 내뱉은 이 말 속엔 케케묵은 조선왕조 시대의 부면적 가치인 남존여비와 직업귀천 사상의 망령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 국회의원이 해당 지역구에선 한국가정법률연구소 동해지부 이사장직과 가정폭력 및 성폭력상담소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국회법사위원장을 지냈다는 것이다.

유교의 부면적 가치관이 활개를 치는 조선시대 수 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출산과 가사의 책무에 올무를 씌운 채 학문의 접근 차단과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으며 남존여비의 불문율을 신봉하고, 심지어 일부 여성들은 소위 학문을 익힌 관료의 노리개(官妓)가 되어왔다. 유교국가인 조선왕조의 폐망과 더불어 반상제도가 타파된 지 근 1백년의 세월이 흘러 유교의 부면적 윤리 가치나 원리가 퇴색된 반면, 남녀평등을 구가하고 양성호혜의 권리 향유를 옹호하는 민주주의 국가 체제가 되었건만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서 남존여비의 사시된 가치관의 타성에 젖어 여성을 비하하고 상품시 내지 유희시하는 그릇된 풍조와 작태가 만연하고 있음은 무슨 연유일까?

최근 극장가에서 조선시대 양반과 여성을 주제로 한 성 유희적 퓨전사극의 열풍은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지만 현재 한국 사회와 한국의 성인 남성들의 성에 대한 비뚤어진 갈망을 간접적으로 노출한 것이거나 그대로 꿰뚫어 본 것은 아닐까? 영화는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성을 주제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사회의 지성의 상징이자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의 전당인 상아탑에서는 결코 여성을 비하하고 성폭력과 성희롱 및 음담패설이 난무하는 곳이 돼서는 안 된다.

얼마 전 한국의 세칭 명문 사립대에서 강의 시간에 일부 몰지각한 교수들이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유머인양 내뱉고 심지어 성희롱과 언어 성폭력이라는 비지성적 비교육적 실언을 휘둘렀다고 보도되었다. 우리나라 대학사회에서의 성폭력, 성희롱 문제가 불거진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러한 비지성적 작태가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문의 원더랜드에서 학문의 자유는 성폭력이나 성유희 마저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깊이 자각하고, 더 이상 양성불평등의 불건전한 문화가 온존할 수 없도록 대학구성원 각자가 양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일반사회에 앞서 대학사회가 솔선수범해 양성평등교육과 성희롱 예방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우리사회에서 성범죄 퇴치를 위해 이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공론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남존여비의 망령이 되살아나 우리사회에 난무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는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성범죄 예방방안과 강력한 성범죄 처벌 법안 및 효율적인 청소년 성보호법을 조속히 제정해 엄정히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6-03-16 오후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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