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사회의 이런 변화는 정보사회와 새로운 세대(New Generation)의 출현으로 가능해졌다. 즉, 고등교육 정책의 변화와 제한된 자원 및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은 대학간 경쟁을 유발했으며, 디지털에 친숙한 플러그앤플레이(Plug-and-Play) 세대의 등장은 고등교육 자체의 개념조차 바꾸고 있다. 그 결과 대학은 ‘변화해야 산다’는 대전제 앞에 기업가적 경영, 행정효율화, 구조조정, 전문화와 같은 수사(修辭)를 늘어놓게 되었다. 더욱이 대학시스템이 교수중심에서 학습자 중심(Learner-centered)으로 변화하면서 이런 변화와 개혁은 대학의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은 과연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몇 년 전 행정자치부는 자성어린 목소리로 공무원들이 일하지 않는 이유를 3무(無)로 지적한바 있다. 즉, 공무원들은 일하지 않는 이유로 “예산이 없어서…, 규정이 없어서…, 선례가 없어서…”라는 핑계를 댄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예산?규정?선례가 없으면 시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이유로 모래 속에 묻혀버린 기회는 얼마이며, 그로인한 기회비용은 또한 얼마였을까?
그러나 이런 가슴 아픈 지적은 대학사회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대학구성원들은 어떤 새로운 사업이나 제도를 적용하고자 할 때, “예산은? 규정은? 다른 대학은?”이라는 그만그만한 질문에 직면했을 것이다. 어떤 사업의 필요성이나 기대효과보다는 투입 가능한 예산과 규정이 제1의 잣대가 되고, 오히려 다른 대학과의 하향평준화가 더 중요한 규범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그 결과 대학들은 과거의 예산과 규정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도토리 키재기 식의 우물안 경쟁에 매몰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3무(無) 현상은 대학사회의 뿌리 깊은 관행으로 자리 잡았으며, 대학경영 뿐 아니라 교육?연구 부문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학협력이나 학제간 교육?연구, 학과 통?폐합의 필요성은 수차례 지적되고 있지만, 대학이 생산한 3무(無) 현상이 대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대학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은 더 이상 대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있으며, 대학은 사회와의 협력적 동반자관계를 스스로 끊어버리는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부와 공공이 주도하는 대학관련 프로젝트와 외국대학의 주요 사례들은 대학의 변화와 개혁을 모색하는 우리 대학사회에 다양한 함의를 제시하고 있다. 즉, 대학은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특성화하고, 다른 대학과 차별화되는 원칙과 기준을 적용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21세기 대학의 비전을 제시한 ‘대학혁명’(The University for the 21st Century)의 저자 두더스텟(James J. Duderstadt)이 지적한 것처럼, 대학은 새로운 교육?연구 패러다임과 다양한 실험정신이 적용될 수 있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제한된 예산과 규정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다양한 가능성이 대학의 핵심가치가 되고, 경쟁 대학과의 차별화가 대학사회의 규범이 될 때 대학이 직면한 변화와 개혁은 21세기 대학의 ‘기회의 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