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버냉키박사의 탁월한 경제정책 능력과 그의 해박한 경제 이론이 아니라 그가 FRB의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기 까지 쌓아 온 경력, 특히 미국의 초일류대학에서 연마되었던 학문적인 실적이 미국 주류사회의 지도자가 되는 하나의 대표적인 전형을 보여 주고 있는 데 있다.
그는 마스터스골프장으로 유명한 조지아주 어거스타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등교육을 문화적 환경이 열악한 남부에서 탁월한 천재성을 인정받아 하버드대학에 진학한 수재다.
미국대학이 가지는 다양성은 그를 하버드라는 울타리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대표적인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대학 교수로 발탁되고 1996년 다시 프린스턴대학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경제를 전공하는 학자로서는 하버드-MIT-스탠퍼드-프린스턴으로 연결되는 황금의 넷트워크에서 금융정책의 대가로서 그 진가를 발휘하도록 성장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최고의 명문대학이라고 해도 한 대학에서 학사로부터 박사-박사후 과정까지 마치는 것은 적어도 미국대학에서는 최상의 선택이 아니다. 더구나 학위를 받은 대학을 멀리하고 새로운 학문의 도전장에 뛰어 든 것은 비단 버냉키의장 만의 특징은 아니다. 학문적인 도전을 위해 미국 전역을 섭렵한 그의 경력에서 우리 대학이 배워야 할 교훈이 있는 것이다.
'학문의 전쟁터'서 검증 거친 저명한 학자
첫째로는 미국대학사회의 경쟁력이다. 어느 한 대학만의 최상, 최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버드- MIT, 스탠퍼드-프린스턴의 경쟁이 대표되는 버냉키의 학문세계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우선 경제학 분야에서는 이들 4개 대학 외에 시카고-버클리까지 우열을 가름할 수 없는 치열한 학문의 전쟁터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능력은 바로 넓은 경쟁의 바다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모교가 아니면, 선후배가 없으면, 고향이 아니면 불편한 우리 대학 사회의 풍조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패턴이다.
하나의 대학이 모든 영역을 석권하는 우리체제는 분명 한계가 있는 것이다.영국의 '더 타임즈'가 서울대를 세계랭킹 100위안에 포함시킨 기사에 흥분하는 우리 현실에서 어느 학문 분야이든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대학이 최소 5-6개가 넘는다는 것은 우리에겐 부러운 것이다.(세계 5대 대학으로 하버드-MIT-옥스포드-캠브리지-스탠퍼드 순으로 나열한 것은 제 식구 감싼 느낌이 있지만)
둘째로는 버냉키가 거친 4개의 대학에서 보는 것과 같은 교수요원의 유동성(이동성)이다. 적어도 미국의 50-60개 정도의 톱 클래스 대학원대학은 10-20 여 개 씩의 동류 대학간 인적, 학문적인 빈번한 교류가 상시에 일어나고 있다.
저명한 학자가 한 대학에서 평생을 머무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저명 학자 중에서 한 대학에서 고등교육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조교수로부터 시작하여 평생을 모교에서 은퇴하는 사람은 단 1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모든 학자들은 학부와 석사가 다르고 석사와 박사학위 수여 대학이 다르다. 학문사회의 본교졸업생 우대정책은 필연적으로 대학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기 마련이다. 한 대학에서 모든 학위과정을 마치고 같은 대학에서 교수직에 취업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과 대학의 위상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이른바 "학문사회의 근친상간(academic incest)"이 가져 온 빛을 바랜 서구 명문대학의 현주소가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 100등을 턱걸이 해도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현실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행정가 변신 "미국 대학 경쟁력의 전형"
셋째로는 학문세계와 현실참여의 바람직한 모형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버냉키가 프린스턴대학을 휴직하고 부시행정부의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맡고 연방준비은행의 위원에 이어 경제대통령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이제 상아탑이론으로는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 국제사회와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렇다고 모든 학자가 현실참여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공무원이 되는 저명학자는 경제적으로 더 어렵게 될 수 있으나 평소 전공분야의 정책을 구현하는 일은 산학협동의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로 받아드려 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 캠퍼스 밖에 나가는 것을 금기로 삼는 것은 오늘의 시대에는 변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명한 학자가 탁월한 행정가가 되는 경우 미국에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넷째로는 전문가를 우대하는 미국사회의 풍토를 들 수 있다. 집권층과 사적인 교분이 연방정부의 고위직 기용에 유리하게 작용되는 것은 미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교분이 두텁더라도 그 직분을 맡을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느냐는 데 엄격한 검증절차가 기다리게 된다. 우선 상원청문회가 첫 번 째 어려운 관문이다.
이번 버냉키의 기용은 그래서 어느 누구로 부터도 부정적인 반응을 받지 않는 것은 그의 탁월하고 검증된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자격이 없는 자의 "코드임용"은 미국사회에서 통하지 않는 것이다.
대학의 경쟁력은 바로 국가의 흥망과 직결된다는 절박한 인식이 아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