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식인은 지성인 혹은 예지인(叡智人)이라고 말할 순 있지만 교양인이라고 떳떳하게 부를 순 없을까? 우리는 흔히 사람을 든 사람인가, 난 사람인가, 된 사람인가로 판별한다. 이 준거에서 본다면 지식인은 든 사람이고, 유명인은 난 사람이고, 교양인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양을 사전적 의미에서 살펴보면 ‘가르치어 기름’, ‘사회생활에서 이루어지는 품행’[, ‘학식을 배워 닦은 수양’, ‘학식, 다식(多識)과는 달라서 일정한 문화 이상을 터득해서 그것에 준하여 모든 개인적 정신 능력의 통일적, 창조적 발달을 몸에 배도록 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교양은 학식을 통해서나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어에도 교양의 개념을 지닌 단어 ‘파이데이아’(paideia)는 ‘양육’이란 의미, ‘훈련과 가르침, 교육’이란 의미, 그리고 ‘교육의 결과, 학습, 문화’라는 의미를 포괄하고 있다. 또한 ‘게오르기아’(georgia)도 경작이나 수양 그리고 문화의 뜻을 지니고 있다.
고대 서양과 마찬가지로 고대 중국의 철학자인 순자(荀子)도 참된 인간을 위한 수양의 개념으로 ‘문화’(文化)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고대 동서양의 용어에서 함의하고 있는 교양의 개념은 교육과 수양 및 문화의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복합적 문화이상체(文化理想?)’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도 ‘배움(學)을 개인의 덕성과 인성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필연적인 도구로서 간주하고 있으며 ‘앎(知)’을 수기(修己)를 위한 중요한 요소이자 도덕적 이상인인 ‘성인군자(聖人君子)’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덕목 중 하나로 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정치학(The Politics)’에서 ‘파이데이아’를 덕성의 실행을 위한 도구로 보면서, 교육이 선(善)과 미덕의 발전을 도모해 줄 수 있는 세 가지 요소-천성(thusis), 습관(ethos), 이성(logos)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상호 조화를 이룰 때 ‘고매한 인물(kalos kagathos)’ 즉 '신사’(紳士)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서양의 두 위대한 철학가들은 교육을 통한 지식을 강조하고 있지만 ‘든 사람’인 지식인보다는 덕성과 교양을 겸비한 ‘된 사람’인 교양인을 교육의 목표이자 개인의 목표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난 사람’은 예체능계의 소위 ‘스타’와 같은 유명인 보다는 지덕을 갖춘 공인으로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임을 추론 할 수 있다.
대학교육을 받고 있거나 경험한 지식인들이여,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고 또 어떤 사람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성인인가 아니면 교양인인가? 어쩌면 지성인마저도 되지 못하는 단순한 ‘기능적 식자’(識者)나 ‘소아적(小我的) 식자’가 되고 있거나 이미 된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과감히 이런 식자의 틀을 깨고 이성을 추구하는 예지인(叡智人)이나 지덕을 추구하는 교양인의 길을 걷는 것이 어떻겠는가?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만추의 계절을 맞아 기능적 정치 논쟁이나 이념 논쟁에 열을 올리는 소아적인 지식인에서 벗어나 예지적인 교양인이 되도록 노력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