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도덕적 해이란 보험 가입자가 보험 가입 후 보험사고의 예방을 위한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사고 확률이 증가하여 보험료가 상승하거나, 경우에 따라 보험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
이를 일반화하면 두 가지 사항이 도덕적 해이의 요건이 된다.
첫째, 비효율이 발생할 것. 즉, 보험료 상승으로 인한 손실이 주의의무 경감으로 인한 편익을 초과하여야 한다.
둘째, 계약의 갱신으로 비효율을 제거할 수 없을 것. 예컨대, 보험회사의 감시 또는 감독으로 보험가입자가 정상적인 주의의무를 다하는지를 알아 낼 수 없어야 한다.
이른바 비대칭 정보의 문제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비대칭 정보 때문이든, 다른 물리적, 제도적 제약 때문이든, 행위의 결과를 행위자에게 귀속시킬 수 없을 때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도덕적 해이는 화재보험, 생명보험, 예금보험과 같은 명시적인 보험뿐만 아니라, 암묵적 보험에도 두루 적용된다. 고정월급을 받는 취업자도 일종의 보험에 든 셈이다.
유한책임을 지는 주식회사가 대출을 받았을 때도 일종의 보험에 든 셈이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기관의 파산을 구제하리라는 기대가 있으면 금융기관도 일종의 보험에 든 셈이다. 이 모든 경우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게 된다.
때로는 전문가들도 혼동하기도 한다. “아니, 도덕적 해이란 시장 실패에 관한 것인데, 정부에도 해당되나요?” 물론, 정부 실패에도 해당한다.
관료나 정치인도 일반국민이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기실, 정치행위에 대해서는 소위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 때문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더욱 심하게 된다.
정보를 얻는 데는 비용이 든다. 개인은 정보획득의 추가비용이 올바른 정치적 판단으로부터의 기대되는 추가효익과 같아지는 수준까지만 정보를 획득하게 된다. 투표의 경우라면, 자신의 올바른 판단으로 결과가 뒤바뀔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결국, 국민은 아주 작은 정보획득 비용도 회피하게 되고, 합리적으로 무지를 선택하게 된다. 매스컴과 같이 값싼 정보 제공원이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래 영국의 의회제도는 노르망디 함락에 따라 왕실이 안보정보를 독점함에 따라 도입된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최근 도청 파문은 도덕적 해이의 고차원한 경로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정보를 가진 사람은 정보를 선별적으로 유출시킴으로써 이익을 취할 수 있다.
합리적 무지 아래 희소한 정보를 해독하는 국민을 상당 기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지만, 그 시기와 속도를 통제하는 것은 엄청난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
정치인의 도덕성에 대한 여러 가지 판단기준이 있겠지만, 첫번째 덕목은 정직이 되어야 한다. 정직이 모든 도덕성의 출발일 뿐만 아니라, 그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체면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거짓에 대해서 너무도 관대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하게 됨에 따라, 정직의 가치는 재평가되어야 한다. 도덕적 해이를 감안하면, 우리는 거짓에 대해서 사후적으로라도 더욱 엄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