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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논단]박지성의 발
한준상 연세대 교수 / 본지 논설위원
국민들은 정부의 교육정책을 믿지 않는다. 저들이 교육당국자들을 향해 한마디씩 내뱉는 소리들은 냉차고 당당하기만 하다. 그들의 옆에 서 있는 교육연구전문가들이니, 교육혁신집단들 모두가 덩달아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연구결과에 학부모들이 헛기침이나 해 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식, 내 아이의 일생이 걸린 문제들이니 학부형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런 중압감 속에서도 정부는 매일같이 교육혁신안들을 만들어 내며 그것에 자족한다. 국민들의 냉소주의를 탓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낙담해서는 한국교육의 미래가 불가능하겠기 때문이다.

심기일전하려면, 우선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길질부터 참고해 보기를 권한다. 유럽에 나가 에인트호벤을 유럽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시키자 그의 발 사진이 웹상에 올랐다. 여느 선수의 발과 똑같았다. 수많은 상처와 굳은 살 투성이였다. 신기할 것도 놀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평발로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차라리 축구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철학자였으며 연구가였다. 발로 공을 찬 것이 아니라 인내로 그것을 차냈던 것이며, 운동장을 뛴 것이 아니라 삶을 연구해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교육연구가들은 우선 박지성의 평발바닥 정신부터 배워야 할듯하다. 이 사회에 유용할 것 같은 교육정책을 외국에서 수입할 적에는 더욱더 그렇다. 서구에서 통용되는 첨단 교육정책들을 한국에 적용할 그때의 상황은 그의 평발과 같은 조건일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달걀을 수입하고, 끝내 그 달걀에서 생쥐나 캥거루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터무니없이 요행만을 바라서는 죽도 밥도 그를 것이겠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연구할 수 있다는 용기는 가상하지만, 그 용기가 무엇이든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된다는 만용으로 용서되어서도 곤란하다. 연구비와 권력만 뒷받침 되면 여자의 자궁까지도 교육학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그 욕망만큼은 정죄되어야, 아이들이 교실에서 제대로 숨 쉴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 동안 그들이 수없이 인용해 댄 외국서적이며 연구물들이 이 땅의 교육을 위해서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연금술사의 코엘류가 물었듯이 자기 자신을 향해 성찰해야 한다. “어째서 이 많은 책들이 필요한 것이죠”라고 묻고는 그저 “몇 줄을 인용하기 위해서지”라고 말로 피식 웃어넘겨서는 곤란하다. 교육을 걱정한다는 수많은 교육연구의 보고서들이 영혼 없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사그라진다면 교육혁신은 영원히 불가능해 질 것이겠기 때문이다.

양식과 탐구력이 있는 연구자라면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위장한 채 ‘우리’라는 말을 남발해서도 곤란하다. 미국의 옛 인디언들은 ‘우리’라는 말을 극도로 가려 써왔다. 우리에는 ‘당신과 그를 지칭하기 위한 ‘우리’라는 말과 ‘당신과 그와 나를 포함하는 우리’라는 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었다. 당신과 그만을 포함하는 각별한 관계를 지칭하는 단어는 ‘니넨’이라고 한다. 반대로 나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위장시킨 우리를 ‘기누’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기누라는 뜻의 ‘우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각별하게 조심했었다. 상대방이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앞뒤 전후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방의 이해관계부터 알아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연구 집단들은 각기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감춘 채, ‘기누의 우리’를 ‘니넨의 우리’로 위장해 오는데 크게 성공해왔다. 그들의 연구물에 ‘니넨’의 혼은 제거시키고 오로지 ‘기누’의 이해관계만 집어넣었기에, ‘니넨’의 우리교육은 저들에 의해 이 험한 곳까지 끌려온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저들을 끊임없이 의시(疑視)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5-11-29 오후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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