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시민들은 총장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우선 대외적으로는 대학의 경영자로서 가장 중요한 기금(외부 지원 자금) 마련에 동분서주한다. 즉 정?재계 주요 인사들과 각종 네트워크를 활용하면서 친분 쌓기를 시도한다.
대내적으로는 부총장, 처장, 학장들과 학내 주요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간혹 주요 정책 관련 교수진과 간담회를 갖기도 한다. 그리고 각 단위 부서에서 올라오는 중요 사항을 결재한다. 그러면서 하루, 한달, 일년이 다 지나간다.
총장의 일년 일정표 중에 평범한 학내 구성원(일반 교수, 직원, 학생)을 차분히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적다.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각종 행사에서 관련 학과장, 교수평의회 의장이나, 직원 노조 위원장, 총학생회장 정도만 일년에 1,2번 정도 만나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을 한국의 주요 대학 총장의 일년 일정표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녹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속한 대학의 총장이 학교의 평범한 구성원(일반교수, 직원, 학생, 강사, 조교)과 친밀하게 대화 나누지 못하고, 관료적 절차에만 익숙한 행동을 할 경우 그 조직의 지도자와 구성원 사이 심리적 단절의 벽은 능히 상상할 수 있으리라.
내가 만일 총장이라면, 나는 대학의 평범한 구성원과 정기적으로 대화할 것이다. 특히 대학 내의 명백한 약자들과 더더욱 가까이 가서 만날 것이다. 한국의 법에서 일용직으로 취급받는 고급인력 강사들과 어떤 경우는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어떨 때는 낮은 급여로 겨우 지내는 생계형 조교들과 ‘사는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대학 경영 전반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그들의 처우를 대폭적으로 개선하지는 못할 지언정, 대학 내에서 소외받고 있는 그들과 대화 나누면 처절하게 소외되고 있는 현장을 스스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약자인 그들에게도 ‘사람 냄새’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외된 자들과의 대화와 나눔에 익숙하지 않으면 명문대학의 명성도 총장 개인의 명예로 한정될 것이요, 비정규직(강사, 근로자, 조교 등)의 고혈로 얻게 되는 대학내 주요 보직자들만의 잔치로 끝날 것이다. 정규직(교수, 직원)에게는 학교 발전이 구성원의 헌신에 따른 결과라는 외교적 수사만 헌사한 채…….
문제는 총장의 바쁜 일상이 아니라, 나눔을 실천할 재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 자세, 마음 씀씀이의 결여가 사회적 불평등을 양산하는 것이리라. 최고 경영자 더더욱 상아탑의 총장이 인본주의적 가치 실천은 등한시하고, 명문대학을 향한 경영에만 한정될 때에 같은 대학에 근무했던 구성원들의 신망은 사라지고, 경영에만 매진했던 지나간 한 총장으로만 폄하될 것이다. 더 비극적으로는 개인의 영화만 추구했던 한 일상인으로만 평가될 수도 있다.
내가 만일 총장이라면, ‘사람의 향기’를 전해준 오래도록 기억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