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홈 > 뉴스 > 칼럼/이슈 홈

목록
프린트 스크랩
장호순 칼럼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장호순 칼럼]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시론]강정구 교수 소동과 언론학 이론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 / 본지 전문위원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소위 ‘친북 반미 발언’을 두고 벌어졌던 소동이 잠잠해지는 기미이다.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국가정체성 위기’나 ‘학문의 자유 수호’와 같은 고차원적 고민보다는 김치 속에 들었다는 납 성분과 기생충 알이 더 큰 근심거리이다. 그래도 강 교수 발언 파동에서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이념적 차이를 확인하는 기회였다는 점이다. 더불어 현재 한국사회에 적용되는 다양한 언론학 이론 모델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소동 초반에는 ‘탄환이론(bullet theory)’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강 교수를 처벌해야한다고 주장한 사람들, 심지어 그에게 강의를 들은 학생들에게 취업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탄환이론의 신봉자들이었다. 탄환이론이란 어떤 메시지에 대해 수용자들이 동일하게 반응한다는 이론이다. 메시지가 마치 총알처럼 직선으로 날아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박힌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대규모 선전선동을 통해 독재 권력을 장악한 1930년대에 등장한 탄환이론은 인간을 선전선동에 쉽게 조작되는 수동적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간주했다.

강 교수의 처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3자 효과이론(third person effect theory)’도 적용했다. 동일한 메시지를 접하더라도 나에게는 영향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얼핏 보면 자신보다는 타인이나 공동체를 배려하는 듯 보이지만, 자신들이 반대하는 의견이나 주장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논리로 악용되기도 한다. 강 교수의 처벌을 원하는 사람들은 강 교수의 주장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수용하거나 동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자신들은 강 교수의 주장을 접하고도 의견변화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강 교수의 주장을 수용하고 동조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의 발언을 제재해야한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강 교수의 발언과 처벌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치열했지만, 국민들에게는 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대적인 언론보도로 인해 강 교수 발언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졌지만, 과거와 같은 레드 콤플렉스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았다. 강 교수의 처벌을 원하는 사람들은 탄환이론과 제3자 효과이론에 근거해 주장을 펼쳤지만, 국민들에게는 그러한 이론과는 상반되는 ‘의제설정 효과이론(agenda-setting effect theory)’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의제설정효과이론에 따르면 미디어는 수용자들에게 어떤 의제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의제에 대한 입장변화까지 유도하지는 못한다. 강 교수 발언 문제로 예를 들면, 언론보도 덕분에 그의 친공 발언과 좌우이념 대립에 대한 관심은 생겼지만, 그의 주장에 새롭게 동조하거나 혹은 반대하는 견해가 생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각 개인의 정치사회적 성향과 주변 환경에 따라 강 교수 발언에 대한 입장은 형성되어 있고, 언론은 대체로 그것을 확인하고 공고하게 해줄 뿐,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 것이다.

한편 강 교수의 처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 (marketplace of ideas theory)’을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은 인간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과 정보들을 최대한 교류할 수 있게 해야 하고, 그러한 메시지들 중 상호 경쟁과정을 거쳐 다수에게 수용되면 진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대신 소수자들에게는 그들의 주장이 아무리 터무니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다수를 설득할 기회를 제공하여,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와 소수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 교수의 처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의 신봉자로 간주하기는 아직 이르다. 자신들이 혐오하는 극우적 표현에 대해서도 그들이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을 적용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정치권에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강 교수의 발언을 둘러싼 소동은 결국 법적 판단으로 귀결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의 법원 판례를 보면, 탄환이론이나 제3자 효과 이론에 따라 반사회적, 반국가적 표현에 대해서 국가보안법이나 형법을 동원해 엄격히 처벌해온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말 잘못한 죄로 수년간 길게는 십수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의 법원판례를 보면,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을 수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대법원은 2002년의 한 판결문에서 좌우 이념, 민족과 통일 등의 문제에 관한 “표현의 자유는 넓게 보장되어야 하고… 부분적인 오류나 다소의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 섣불리 불법행위의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한 언로를 봉쇄하여서는 안 된다”고 관용을 주문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이 한국 사회에 보편화된다면 강 교수 발언을 둘러싼 소동처럼 소모적인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장호순 칼럼 | 입력 : 05-11-07 오전 9:06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목록
프린트 스크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1

최신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