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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독에 빠진 캠퍼스' 눈살
진지한 행사는 외면…기성세대 술문화만 답습
대동제=술 먹는 날, 그래서 ‘주(酒)동제’라고 불린다는데...

5월 대학가는 대동제가 있어 좋지만 딱히 즐길 행사가가 없어 자연스럽게 술판으로 이어진다. 이러다보니 대낮에 마련된 행사는 조용조용, 저녁에 마련된 주점은 왁자지껄 한 것이 일반화된 캠퍼스 대동제다. 총학생회에서 뭔가 진지하고 사회성 짙은 이슈를 준비해 보지만 학생들의 호응이 많지 않다.

4일 저녁 고려대 학생회관 앞. 어두워진 캠퍼스에 군데군데 불빛이 켜지고 파전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막걸리며, 소주, 맥주가 이미 캠퍼스를 장악했고, 쌓여가는 빈병도 눈에 띈다. ‘금주’가 학칙인 대학도 있다는데, 금주대학은 아니지만 이날만큼은 고대 또한 그 누구 하나 간섭하지 않는 합법적 대규모 술판이 벌어진 셈이다.

여기저기 술잔을 기울이는 남녀 학생들의 정겨움이 더해져 얼큰하게 취할 무렵 곳곳에서 목청을 높여 '민족고대'를 부르짖자, 주위는 아우성으로 가득해진다. 때마침 교내 한켠에서 밴드부가 연일 불러대는 음악 메들리로 캠퍼스 주막은 어느 비싼 술집 못지않은 분위기다.

이번 대동제에 동아리 선후배들과 주점을 차린 조형준(경영 03)씨는 “대동제=술 먹는 날”이라는 규정부터 한다. 그는 “사실 별다른 대학문화가 없는 상황에서 대동제를 해도 별 것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낮에 하는 행사에는 학생들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 자연히 밤에 열리는 주점에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고 했다.

기독교 재단에서 설립한 지방의 모 대학에서 편입한 이상혁(정치외교 대학원)씨도 축제다운 축제에 목마르기는 마찬가지. 이씨는 "최근에는 축제라고 해도 교수님들이 수업을 빼주지도 않고, 간혹 어떤 교수님은 술 안 먹고 수업에 왜 들어왔냐고 물을 정도다"며 "타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도 축제에 대한 느낌은 다들 비슷해 술 마시는 거 말고는 별다른 행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간혹 특별한 주점도 눈에 띈다. 통계학과의 '룡천 열차 폭파사고 주민돕기’가 그것. 이 과는 매년 주점을 통해 참사 현장을 알리고 수익금의 일부를 관련 단체에 기부해왔다. 지난해는 여중생사망사건을 학생들에게 알리고 벌어들인 수익금 일부를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에 보냈다. 이민영(통계학 03)씨는 “대동제가 자칫 술 먹는 날로 왜곡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도 “이왕이면 의미있는 일을 하자는 의미에서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우리 주점이 장사가 제일 잘 되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여하튼, 술과 주막은 대동제에서 피할 수 없는 주요 길목. 그래서인지 축제를 준비하는 총학생회의 고민은 남다르다. 고대총학생회가 이번 축제에 내건 타이틀은 ‘회색대학 색깔 입히기'. 경쟁과 학점만이 삶의 방식이 돼버린 회색빛 대학에 색깔을 입히겠다는 취지다. 박주은 부총학생회장은 “흔히 고대축제에 주점밖에 없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동아리, 학회, 학생회들이 마련한 행사를 비롯해 총학생회 후원행사가 가득하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흥미롭고 보탬이 되는 축제를 즐길 수 있다”고 참여를 당부했다.

하지만 술 없는 대동제는 ‘앙꼬 없는 찐빵’이어서 여전히 주요한 행사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다 최근 주류업체에서 자사 홍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대학 축제를 돕고 나서 그렇잖아도 술로 얼룩지는 대학축제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난여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른바 ‘술판 대동제’는 한 대학만의 일도 아니며, 최근의 일만도 아니다. 90년대 초반 외대학보사에서 대동제 취재를 했던 오미나(30세)씨는 당시를 이렇게 추억한다. “술판 대동제, 주막촌 대동제, 이게 기사의 메인 내용이었다. 다들 술로 얼룩진 대동제를 비판하면서도 막상 진지한 행사에는 참여가 거의 없고, 대중연예인이 오면 몰려가고 언제부터인가 대학축제의 현실이 돼 버렸다”고 한탄했다.

대동제 기간 자칫 폭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우려에 대비, 대학 측에서 관련 특강을 연 경우도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해 신라대는 봄 축제를 앞두고 ‘건전한 주도’라는 특강을 마련해 학생들의 호응을 받았다. 강사로 초청된 감윤희 부산알코올상담센터 상담실장은 과도한 음주가 가져오는 개인적·사회적 병폐를 설명하고 특히 대학생들의 무절제한 음주행태가 유발하는 각종 문제점들을 적시,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을 강조했다.

5월이면 매년 열리는 대동제, '술'이 아닌 고민과 여흥을 함께하는 진정한 대동마당으로 대학 대동제가 탈바꿈해야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신라대 정상모 학생생활연구소장은 "대학가 축제에서 술이 빠질 수 없는 현실인데 축제를 들여다보면 기성세대의 잘못된 술 문화, 예를 들자면 폭음, 다툼 등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 많아 우려된다"면서 "주점보다는 재활용품을 이용한 바자회나 단체 봉사활동,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연극공연, 과 특성에 맞는 학술제 등 생산적이고 보다 대학생다운 행사들로 조금씩 전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4-05-10 오전 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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