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홈 > 뉴스 > 칼럼/이슈 홈

목록
프린트 스크랩
손광식 칼럼
손광식 칼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경향신문 경제부장, 편집국장, 주필 
문화일보 주필, 전무이사  / 문화일보 대표이사 사장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현재) 상지컨경영설팅(주) 회장,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고문

* 주요 저서
- 
한국의 경제관료(공저), 1979  / 거탑의 내막(공저), 1983 /  한국의 이너서클, 2002 

[손광식 칼럼] 상지경영 컨설팅 회장
정치 '생산양식'을 바꿔라
손광식 본지 논설위원/ 언론인
선거가 끝났지만 유권자들은 양 쪽으로 갈려 아직도 감정을 노출시키고 있다. 한 쪽에서는 이제 나라꼴 잘 되어갈 것이라고 걱정이다. 다른 쪽에서는 특정 지역의 ‘몰표 현상’은 여전하고 아직도 지역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게임이라면 선거의 결과는 일당 과점으로 끝났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어느 쪽도 사실 인정을 회피하고 있지만 이번 총선 결과는 황금분할이다. 집권세력의 ‘일당독재’의 우려도 없어지고 ‘야당 횡포’도 사라지게 되었다. 새로운 제3의 진보세력은 만만치 않은 의석을 점유하여 정치지도의 형질 변화마저 가능하게 되었다. 완벽한 작품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정치를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본다.

물론 여러 현안에 대한 각 정파의 엄청난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고 노선에 대립적인 면이 많다. 특히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대립은 실체 이상으로 과장되고 있기도 하다. 친미와 반미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립, 성장경제와 복지경제의 충돌, 반공노선과 연북노선 기업가와 노동자의 갈등이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 걸음 나아가 이제 멀지 않아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사라지고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나마 이룩된 경제성장의 기반도 무너지기 시작하면 남미 꼴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대로 읽어낸 예측과 우려인지 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한낱 기우가 될 수도 있고 사실로 나타날 수도 있다. 사실상 이번에 승리한 정치세력은 거슬러 올라가면 50년 전부터 시작된 헤게머니 쟁탈전의 결과로 탄생되었다. 이 새 정치세력의 기반은 물적 생산이 아니라 이념적 자산의 축적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그 흐름을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권력을 잡고 난 다음에는 보수화 한다는 보편적 ‘정치권력의 원리’가 있다. 이제까지 지배해왔던 국가주의라는 생산양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다. 다 같이 민생경제를 소리 높이고 있는 것은 하나의 징후일 수도 있다.

하나의 긍정적 기류는 여느 쪽이건 정치무대에 등장한 인물이 새롭다는 것이며 ‘반 부패’의 물결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미 정치환경이 변했고 ‘국민적 압력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물적 성장과 정신적 자산의 융합을 과연 새 정치세력들이 이루어 낼 것이냐에 있다. 그것도 물리적 융합이 아니라 상생의 정치를 통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정치문법이 필요하다.

크게 보면 우리의 이제까지의 생산양식은 국가주의였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분야의 생산물들은 ‘나라의 규범’이 지배했다. 그 규범은 때로 권력자들의 편의적인 잣대도 되었지만 솔직히 말해 국민 심성 속에도 깊은 뿌리를 내렸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크게 진전되고 경제가 성장되었어도 ‘애국주의’의 기조는 크게 변했다고 볼 수는 없다. 정치가는 애국을 앞장세워야 했고 기업가는 사업보국을 앞세워야 했다. 문인들은 금단의 영역을 넘보기 두려워했다. 그런 제한 반경 안에서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었고 공장을 세웠고 문학작품을 써왔다. 이제 이런 생산양식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국가주의의 상징처럼 되어왔던 대통령도 이젠 구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 위해 사업하는 세상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국회의원을 열 명이나 국회에 보냈다. 미국은 ‘절대적 우방’의 위치에서 내려 앉아 있다. 매몰되었던 역사의 진실들은 하나씩 둘 씩 벗겨지고 있다.

국민소득 ‘정체설’이 있다. 숫자는 늘었어도 7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는 분석이다. 경제는 외면하고 정쟁만 일삼은 결과라고 말한다. 반미주의와 친 노동자 정책 정서가 파생한 ‘반생산적 기류’가 외곽을 때렸다고도 한다.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을 파고들어가 보면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고 있는 데 거기에 맞는 생산양식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게 진짜 이유이다.

손광식 칼럼 | 입력 : 04-04-24 오후 12:32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목록
프린트 스크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1

최신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