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육개발원(부연구위원, 연구팀장)
- 미국 피츠버그대 국제교육연구소 초빙연구원(풀브라이트 재단)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박사과정(교육행정 전공)
그리고 최근 각 지방대학들은 총 2천2백여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나눠 갖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하고 있다. 지난 국민의 정부 초기에는 BK21이라는 사업 때문에 온 나라 대학들이 한 바탕 홍역을 치루었는데 이번에는 ‘누리 사업’으로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루고 있다. 두 사업 모두 우리 나라의 대학경쟁력을 제고하고 나아가 21세기 국가번영의 기틀을 놓는데 기여할 것으로 믿으면서도 어딘지 모를 찜찜함이 자꾸만 뒤꼭지를 잡아챈다. 아마도 BK21사업이 초기부터 있었던 비판들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과 이제 5년이 지나가는 마당에 애초의 화려했던 목표들이 조금씩 그 빛을 잃어가는 것을 보면서 갖게 되는 기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의미를 짚어 보고 만에 하나 있을 또 하나의 국가자원 낭비를 예방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
첫째 누리 사업은 그나마 부족한 정부의 고등교육예산을 매우 비합리적으로 배분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당초 누리 사업은 당초 범정부적인 RIS 틀 내에서 교육예산을 넘어서는 대규모의 재정투자가 기대되었다. 그러나 현재 상태는 교육부가 마련한 2천2백여억원 규모의 재정만 투입되고 있을 뿐이다. 실상 이 재원은 그동안 이러 저러한 모습으로 투입되어 오던 고등교육관련 예산들을 한 데로 묶고 나서 상징적 수준의 추가 투자만이 합쳐진 것일 뿐이다.
누리 사업은 기존 사업들의 희생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그동안 비효율적으로 투자되던 재원을 재배분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사업이 추진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신문지상에 보도되고 있는 누리 사업 신청사업들을 보면 대체로 산업현장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학문분야들, 예컨대 생명공학이나 나노공학 등의 공업관련 분야와 벤처경영학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응용학 분야가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등으로 배분될 수 있었던 재정을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누리 사업은 지방대학을 직업훈련기관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대학은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누리 사업의 최대 강조점은 지역산업현장에 필요한 인력양성이다. 말하자면 대학은 이제 지역 기업들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지 않는 한 재정지원도 받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교육하는 곳이며 교육은 임시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자 양성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기초가 튼튼한 인재를 기르는 일이다. 물론 기술자양성도 필요하며 우리 나라 대학의 교육프로그램이 일부 기업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 부적합한 측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에 필요한 재정은 교육예산으로 지원되기 보다는 산업자원부나 재정경제부 등과 같은 보다 직접적인 목적을 가진 정부부처의 노력과 예산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리 사업은 기초학문을 육성하고 폭 넓은 안목과 인격을 갖춘 인재를 기르는 일에 쓸 돈을 모두 직업기술훈련에 돌려쓰는 우를 범하고 있다.
누리 사업은 이미 활시위를 떠났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심각히 점검 재점검을 해야 한다. 보다 더 큰 재원과 규모로 RIS가 가동되고 그 안에서 교육부는 지방대학들이 교육기관 고유의 역할을 훼손 받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현재처럼 그나마 작디작은 교육예산을 누리에 톨톨 털어주고 누리에 참여하지 못한 학문분야와 대학들은 맨손만 빨아먹게 하는 화를 정말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