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20세기초까지만 해도 중국은 근대화의 흐름에서 뒤처져 과학기술이 낙후한 나라였고, 따라서 서구열강의 각축장으로 전락해 외세의 침탈에 시달려야만 했다. 사회주의혁명 이후의 중화인민공화국도 기간산업을 착실히 발전시켜왔고, 핵개발에도 성공했지만 그래도 과학기술대국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신주5호의 성공으로 모든 것은 달라졌다. 과학기술대국인 프랑스나 영국, 독일, 일본도 하지 못한 일을 중국이 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로부터 달을 향해 날아가는 것은 중화민족의 아름다운 꿈이었기에, 유인우주선비행의 성공은 그들에게는 더더욱 감개무량한 일이었을 것이다. 양리웨이는 일약 영웅이 되었고 중국인민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들의 과학적 성과에 한껏 고무되었다.
유인우주비행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에서는 주요도시를 순회하는 재인항천전(유인우주비행박람회)이 열리고 있다. 필자는 얼마전 경제특구인 심천에서 열린 우주박람회와 북경과학기술주간행사를 참관했는데 여기에서 우주대국 중국의 자신감과 과학기술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중국이 놀라울 정도로 빠른 과학기술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국가적인 지원과 과학기술진흥정책의 결과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오랫동안 열과 성을 다해 계속해온 과학보급(과학대중화)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과학대중화 행사는 ‘과학기술주(科學技術周 Science Week)행사’인데 북경과학기술주간은 그중 가장 규모와 영향력이 큰 행사이다. 이 행사는 1995년에 첫 행사를 한 후, 올해 10주년을 맞았던 대형 과학축전이다.
중국정부는 날로 커져가는 과학기술대중화의 중요성을 인식해 매년 5월 전국적으로 과기주간을 선포할 것을 아예 법으로 정해 놓았다고 한다. 2004년 과기주가 내건 주제어는 ’科技以人爲本 全面建設小康 : 과기이인위본 전면건설소강)이었다. “과학기술은 사람들을 기본으로 해야 하고 전면적으로 소강사회를 건설하자”는 뜻이다. 인간중심의 과학기술을 내세우면서 잘 먹고 잘 사는 소강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중국인이 내세우는 ‘소강(小康)’이란 인민폐로 월 1800원(한화로 월 27만원)수준인데, 그 정도면 어느 정도 먹고사는 소강상태로 간주한다고 한다. 처음부터 ‘대강(大康)’이 아니라 분수에 맞게 ‘소강(小康)’을 내세우는 데는 등소평 이래 그들이 줄곧 견지해온 현실적인 실용주의 사상이 담겨있다.
중국의 과학기술은 국가적인 지원과 국민적인 관심 속에서 착실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산업기술이나 첨단산업이 아직 우리보다 뒤졌다고는 하지만, 중국은 무서운 잠재력을 갖고 있는 나라다. 무엇보다도 그런 그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은 충분히 배울 만 하다.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은 일찍이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가 전율하리라”라고 말했다. 당시 프랑스는 국력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최강대국이었지만, 중국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유럽최고 권좌의 황제마저도 두려움을 가졌던 것이다. 그런 중국의 저력을 21세기 벽두에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학발전은 70-80년대 이래 과교흥국(科敎興國)의 기치를 내걸고 전국가적인 차원에서 과학기술진흥정책의 당연한 귀결이다.
중국이 과학기술을 정책적으로 중시한다는 것은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이공대학을 나온 엔지니어출신이란 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공계위기로 고심하고 있는 한국사회는 중국의 과학발전을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