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육개발원(부연구위원, 연구팀장)
- 미국 피츠버그대 국제교육연구소 초빙연구원(풀브라이트 재단)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박사과정(교육행정 전공)
우리 대학들은 언제부터인지 가르치는 선생의 권위는 온데간데없고 싸구려 학점 사냥에 나선 학생들의 목소리만 드높다. 대학의 주인이 그들이라고 한다. 선생들의 눈치보기는 극으로 치달아서 여기저기서 가관지경이 벌어진다.
학부제가 도입된 이후 대학의 교육과정은 희한하게 왜곡되었다. 취업경쟁력을 높이고 지식정보사회에 맞추어 멀티펑션(Multi-function) 기능인을 만든다는 논리 아래 복수전공 선택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전공과목 이수학점수가 줄어들었다.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고 하였으며, 대학개혁평가에서 점수를 따고 정부지원금을 따는 지표라고 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복수전공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쉬운 교양과목을 택했다. 그랬더니 교수들은 책임시수를 채우기 위해 학생들의 입맛에 맞는 교양과목들을 시장에 좌판을 벌이듯 개발해냈다.
백화점 문화강좌에나 맞을 과목들이 늘었다. 더 가관인 것은 신문과 방송에서들 현장중심이니 경험중심이니 시대감각에 맞느니 해가면서 대서특필하고 확성기를 틀어댔다. 수많은 학생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것을 보니 과연 명강의 중의 명강의라고 한다.
그런 사이에 소크라테스를 논하고 아인슈타인을 가르치려는 노 교수의 때 묻은 강의노트는 구닥다리 취급을 받고 학점까지 짜다는 소문이 나면 폐강의 고배를 마셔야만 한다.
수요자 중심 교육을 하는 또 한 가지 희한한 방법은 취업경쟁력을 높인다는 미명하에 학점을 부풀리는 일이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재수강에 재수강을 한다.
신입생 때 멋모르고 선배들 복학생들이 전략적으로 듣는 과목을 택했다가 학점을 망친 아이들은 몇 년 후 고스란히 재수강을 통해 복수를 한다. 재수강 기록은 마치 호적기록을 말살하듯이 과거의 기록을 삭제하고 새로운 기록만 남긴다.
그래서 어떤 학생의 성적표엔 1학년 때는 한두 과목만 공부하고 실컷 놀다가 4학년 가서 무척이나 열심히 공부한 것처럼 나타난다. 어쨌든 졸업평점은 A학점을 넘어선다.
눈치보기의 극치는 이른바 학생들의 학점포기제 요구인데, 이에 따르면 과거에 들은 과목은 원하면 언제든지 안들은 것으로 해버리고 새 과목으로 듣자는 것이다. F학점을 주지 못하는 교수들의 눈치보기가 물론 더 문제이지만 말이다.
수요자 중심 교육과 학생눈치보기는 너도나도 모두가 대학을 다니면서 이미 시작되었다. 대학들과 대학의 선생들은 학생들이 등록을 안 할까 노심초사한다.
곧바로 재정이 바닥나고 선생의 봉급을 못주고 급기야 대학은 문을 닫아야 할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렇다고 잘하는 대학 못 하는 대학이라는 구분도 없으니 애써 잘 해서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골라 가르칠 길은 어디에도 없다. 평등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눈치보기의 대미이다.
실상 대학의 눈치보기는 이미 초중등 단계를 포함한 우리 교육 전반에 퍼져있다.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자의 권위를 잃었다.
물론 그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 공부하지 않았고 이제는 더 가르칠 것이 없어 타협해버렸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가르치려는 사람들에게까지 이 병이 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려운 것은 그 사이에 나라도 병이 들고 오랜 동안 지켜온 동방학습지국의 운명이 바람 앞 등불이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더더욱 기묘한 것은 그렇게 눈치보고 보살폈던 학생들이 외국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그들 중에 몇몇은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