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과 철학의 뫼비우스 띠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도올 김용옥 선생이 대담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과학과 철학의 두 대가는 각자의 전공은 물론, 상대방의 전공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것이다. 만일 이 때 김용옥 선생이 “황 교수님께서는 줄기세포 복제 기술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황 교수는 그간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것이다.
과학철학은 이처럼 과학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다룬 학문이다. 과학과 철학의 연계 학문이기 때문에 과학과 철학을 동시에 연구하는 학문으로 이해되기 쉽지만 과학철학은 경험론, 실증주의, 구조주의 등 철학 이론을 바탕으로 과학을 재조명하는 학문이다. 비록 가상의 상황이긴 하지만 철학자인 김용옥 선생과 과학자인 황우석 교수 간의 과학기술에 대한 의문과 고민들은 바로 과학철학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최종덕 상지대 교수(과학철학)는 “과학철학은 과학의 보편 법칙 등을 추론하는 귀납과 사유과정에 대한 타당성을 논의한다"면서 "과학의 진리가 자연의 사실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탐구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학철학이 다루는 주제들은 어떤 것일까? 한양대에는 교양필수로 ‘이공계 학생을 위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와 ‘인문·사회계 학생을 위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라는 과학철학 과목이 있다. 이 과목에서 배우는 것들은 △유전공학에 대한 인문 사회적 성찰 △새만금과 가치중립성 △제국의 신경망 : 과학과 제국주의 △파놉티콘 : 감시와 역감시의 역사 등이다.
과학철학은 ‘과연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은 과학적인가?’ 라는 과학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줄기세포 복제 기술은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라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두루 다룬다.
■ 과학, 왜 철학을 만났나?
아인슈타인의 ‘E=mc²’란 공식은 과학자가 아닌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과학 공식이다. 이 공식은 에너지와 물질이 계량적인 측면에서 같다는 것, 즉 에너지 보존 법칙을 의미한다. 그 후 이 공식은 획기적인 과학적 성과라는 찬사와 함께 전 인류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비록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원인이 되긴 했지만 동시에 인류의 공포대상이 된 원자폭탄이 바로 E=mc²란 공식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 공식은 과학적 성과에서 과학적 위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과학기술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도 커졌다.
아인슈타인의 E=mc²공식에 얽힌 일화는 과학이 철학에게 러브콜을 보낸 이유를 잘 보여준다. 과학철학은 과학기술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커지고 과학기술의 윤리적 측면 또한 급등하자 이를 학문적으로 풀기 위해 등장했다.
물론 그 기원을 따진다면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를 시작으로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오, 뉴턴, 베이컨 등 철학 및 과학의 대가들은 과학과 철학을 동시에 연구했고 이것을 과학철학의 기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르네상스를 이뤘던 근대 이후 과학철학은 하나의 학문분야이자 연구 분야로 구체화됐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과학이 철학을 만난 이유는 다음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때는 발명의 시대로 불리는 19세기 중반의 영국. 과학자 집안의 손자인 열세 살 소년 레이는 어느 날 미국에서 과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할아버지 로이드가 보낸 스팀볼을 전달받는다.
레이는 곧 스팀볼이 초고압 증기를 고밀도로 봉인한 것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발명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역시 과학자인 레이의 아버지, 에디가 미국의 한 재단과 손 잡고 스팀볼을 무기화하려 하면서 스팀볼이란 위대한 과학기술을 둘러싼 비극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워쇼스키 형제(매트릭스 연출), 제임스 카메론(터미네이터 연출) 등 헐리웃 거장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일본 애니매이션 감독 오토모 가츠히로의 2004년 작품 ‘스팀보이’의 줄거리다. 스팀보이는 스팀볼을 무기화하려는 인간의 파괴적 욕망을 고발함으로써 ‘과학기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 과학철학류의 애니매이션이다.
레이의 아버지 에디와 미국의 한 재단은 과학기술의 무비판적 수용과 맹목적 숭배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과학기술의 무비판적 수용과 맹목적 숭배는 과학기술의 위험한 질주를 야기하며 그 질주는 인류를 위협하는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과거처럼 결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발명하고 보자는 발상은 과학기술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 뿐이며 자기 성찰 없는 과학기술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이 과학철학의 믿음이다.
이상욱 한양대 교수(과학학)는 “과학철학은 과학기술 활동이 윤리적인 결정과정과 관련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살펴본다”며 “사회적 합의 도출 과정에서 과학자, 기술자, 인문학자, 행정가들 간 토론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고 말했다.
■ 과학철학에 대한 오해와 진실
과학철학이 과학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과학철학이 반 과학적 경향을 가졌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철학은 과학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명확한 이해와 과학기술의 합리적인 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친 과학적 경향을 보여준다.
과학철학에 대한 또 다른 오해 중 하나는 과학철학은 단순히 학문의 한 분야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과학과 철학이 연계된 학문인 만큼 일반인이 소화하기에는 벅찬 것이 사실이다. 과학철학개론서를 접한 일반인들 중 대부분이 쉽게 책을 포기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비록 학문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스팀보이·매트릭스·터미네이터 등 과학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있는 영화나 애니매이션을 보는 것, 일부 대학에서 교양과정으로 과학철학과목을 가르치는 것, 평소 과학기술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것 등은 모두 일상에서 일어나는 과학철학적 행위들이다.
따라서 과학철학은 비단 학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며 일반인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마인드다. 또 이는 과학철학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이초식 고려대 명예교수(철학)는 “현대 사회는 특수 영역의 과학자나 기술자가 아닌 일반 지성인들도 과학이론의 구조, 과학적 설명과 예측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과학철학적 소양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송찬영 차장·윤지은·김은영·정성민·이현준 기자, 사진:한명섭 기자> / 후원 : 한국과학문화재단·과학기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