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독도는 동도(東島)와 서도(西島)를 주된 섬으로 하여 그 주위에 흩어져 있는 가제바위, 구멍바위, 지네바위 등 36개의 바위섬과 암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독도에 대한 명칭은 조선 성종 때에는 삼봉도(三峰島), 정조 때에는 가지도(可支島), 19세기 말에는 독도(獨島), 석도(石島)라 불러왔다.
한편 오랜 세월에 걸쳐 이곳을 자주 침략해왔던 일본은 17세기 이후에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라 불렀고, 독도를 ‘마츠시마(松島)’라 불러왔으며, 서양에서는 이 독도를 처음 발견한 선박의 명칭을 따서 프랑스에서는 ‘리앙쿠르(Liancourt)’ 영국에서는 ‘호넷(Hornet)'이라 이름을 붙여 해도(海圖)에 기입했다.
이 독도의 이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표기된 한자의 뜻에 좇아 외로이 홀로 서있는 섬이라는 의미로 인식하고 있지만, 현재 울릉도에서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사는 주민들은 ‘독섬’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독섬’은 돌(石)을 뜻하는 충청 전라지방의 사투리 ‘독’과 ‘섬’을 결합시킨 순수한 우리의 고유어로서 돌로 형성된 섬을 가리킨다. 이 ‘독섬(돌섬)’이 뒤에 ‘돌’의 한자어인 ‘석(石)’에다 섬을 나타내는 한자어 ‘도(島)’가 결합되어 ‘석도(石島)’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독도(獨島)라는 명칭은 ’독섬‘을 한역하는 과정에서 ’독‘이 ‘석(石)’의 뜻인지를 모르고 다만 그 음이 같은 한자인 ‘독(獨)’으로 잘못 해석하여서 만든 이름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독도(獨島)는 표기에 나타난 뜻으로 해석한 ‘홀로 있는 외로운 섬’이 아니라 돌 즉 ‘바위로 된 섬’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독도를 가서 보거나 사진으로 보더라도 앞서 기술한 바처럼 36개의 바위섬(巖島)과 암초로 구성된 섬이기 때문에 돌섬(바위섬)을 나타내는 독섬이 가장 알맞은 명칭인 것이다.
그런데 독섬의 ‘독’에서 보다시피 돌의 충청 전라 방언인 ‘독’이 섬의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우리 땅 울릉도에 일본인들이 침범해 온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지만 그들이 울릉도 내왕을 재개한 것은 19세기 중엽이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일본 외무성으로 서계(書啓)를 보내어 항의를 하는 한편, 울릉도의 재개척(再開拓) 가능성을 검토하고 1883년 4월에 개척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우선 각 도로부터 주민들을 모집한 16호 54명을 울릉도에 살게 하였다. 그 때 전라도 주민들이 그 이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그 울릉도에서 가까운 돌로 된 섬을 자기들의 지역 말인 ‘독섬’으로 불렀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진작부터 울릉도를 빈번히 침입한 일본은 앞서 언급한 바처럼 17세기 이후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라 불렀고, 독도를 ‘마츠시마(松島)’라 불러왔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울릉도에는 지금도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니 울릉도를 죽도라고 명명한 것은 타당성을 지닌다. 하지만 독도에는 현재 대나무는커녕 소나무도 자라지 않고 있으니 송도라는 명칭도 사실 맞지 않는다. 하지만 백번 양보하여 지금은 그곳에 소나무가 없지만 소나무의 속성으로 보아 바위에도 자랄 수가 있고 그들이 송도라고 명명할 당시에는 소나무가 몇 그루 자라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 송도는 그런대로 인정해 주자. 그런데 이제 와서 그들은 대나무와는 관계가 없는 독도를 자기네 영토인 대나무섬이라고 우기니 억지치고는 지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