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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주권 주장은 심각한 범죄”
영남대 김화경 교수,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논거 허구성 밝혀
“최근 일본 외무성은 17세기 일본 사람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인지하고 있었다는 ‘17세기 인지론’을 논거로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논거 자체가 터무니없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영남대 독도연구소장 김화경(59,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일본의 독도영유권 망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료를 제시해 화제다.

최근 김 교수는 독도특집으로 발간된 영남대 영자신문 ‘옵저버(Observer, 283~4 통권호)'에 “일본은 독도주권을 주장함으로써 심각한 범죄(crime)를 저지르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이 글에서 김 교수는 일본 외무성의 독도영유권 주장 논리가 ’고유영토론‘에서 ’무주지선점론(無主地先占論)‘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17세기 인지론‘으로,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들의 논리가 타당하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특히 17세기에 일본 사람들이 독도를 인지했다고 하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른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유는 ‘17세기 인지론’의 논거로 일본 외무성이 제시한 사료에 대한 해석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라는 것.

일본 외무성은 1667년 저술된 사이토 후센(齋藤豊仙)의《온슈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를 제시, 일본의 북서쪽 경계가 되는 '주(州)'를 울릉도로 해석하고 '마쓰시마'라고 부르던 독도를 오키도의 부속도서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주(州)'에 대한 일본 측의 해석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에 다르면 주(州)란 사람들이 사는 지방행정단위를 나타내는 말이므로, 당시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울릉도에는 주(州)라는 명칭의 행정단위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

따라서 김 교수는 17세기 일본이 북서쪽 경계로 인식했던 ‘주’는 일본 시마네현 북서쪽에 위치한 ‘오키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일본 외무성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반박했다.

다음은 일본 외무성이 제시한 글의 일부다.

“온슈는 북해(北海) 중에 있다. 옛날에는 오키도(隱岐島)라고 했다. (중략)북서쪽으로 1박2일을 가면 마쓰시마(Matsu-sima:松島, 독도를 가리킴)가 있다. 이곳에서 다시 1일을 가면 다케시마(Dake-sima:竹島, 울릉도를 가리킴)가 있다(속언에 이소다케시마(磯竹島)라고 말하는데, 대나무와 물개가 많다. 신서(神書: 日本書紀를 가리키는 것 같음.)에서 말하는 이타케루(五十猛)인가?). 이 두 섬은 무인도인데, 고려(高麗)를 보는 것이 마치 운슈(雲州)에서 오키(隱岐)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북서쪽 경계는 이 주(州)를 한계로 한다(隱州在北海中 故云隱岐島……戌亥間行二日夜有松島 又一日程竹島(俗言磯竹島 多竹漁海鹿 按神書所謂五十猛歟). 此二島無人之地 見高麗如自雲州望隱州 故日本之乾地 以此州爲限矣.).”

김 교수는 또 2005년 일본 시마네현 오키도에서 발견된 안용복(安龍福)의 성명서와 1696년 안용복이 일본에 가져간 지도에서도 17세기 사람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안용복은 일본 측에 ‘조선의 팔도(八道)’를 선언하면서 강원도의 북쪽 섬 중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있다(江原道 北道中 竹島松島 有)”고 명기하고 있다"며 "안용복은 특히 이 두 섬을 ‘자산도(子山島)’라고 표기한 지도까지 가지고 갔었다는 사실에서 당시 사람들은 두 섬을 모자관계에 있는 조선의 영토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당시 일반인들의 인식은 단순히 민간적인 차원에 그친 것이 아니라 조선 정부의 공식기록인 실록에도 나타난다는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김 교수는 숙종 40년(1714년) 7월22일의《숙종실록보궐(肅宗實錄補闕)》기록에서 “포구(浦口) 사람들의 말을 자세히 듣건대 평해(平海)와 울진(蔚珍)은 울릉도와 거리가 가장 가까워서 뱃길에 아무 지장이 없고, 울릉도 동쪽에 섬이 마주 보이는데 (그것이) 왜(倭)와의 경계(境界)에 접해 있다(詳聞浦人言 平海蔚珍 距鬱陵島最近 航路無少礙 鬱陵之東 島嶼相望 接于倭境).”라는 구절을 인용, " '울릉도의 동쪽에 마주 보이는 섬'이라는 표현에서 당시 조선정부가 독도주권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울릉도 동쪽에 섬은 독도뿐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조정의 공식적인 기록이자 정사(正史) 편찬의 사료가 되는 실록에서도 독도를 일본과의 경계로 적고 있음이 분명하다”면서 “이처럼 학계에서 간과하고 있었던 자료들 중에서 대한민국의 독도주권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계속해서 밝혀내는 것이 일본 외무성의 ‘17세기 인지론’에 대한 객관적 대응논리를 공고히 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남대 독도연구소는 감성이나 애국심에 호소하는 독도연구가 아니라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후진양성을 목표로 지난해 5월 전국 대학 최초로 설립돼 우리나라와 일본 등지에 흩어져있는 독도관련 자료 수립과 연구 인프라를 구축해오고 있다.

한용수 기자 (unnys@unn.net) | 입력 : 06-06-20 오후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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