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당초 '공부하는 사람들의 조합'으로 시작했다.
중세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국가로 구성됐다. 동쪽 항구 베니스(베네치아)왕국과 서쪽 항구 제노아 왕국이 번성했다. 이들 지역이 십자군 전쟁의 보급 물자 기지가 되면서 상업과 수공업이 발전했다. 이로 인해 이 지역 상인들이 많은 돈을 모았다. 부를 축적한 상인들은 농부들이 내는 세금과 별도로 추가로 세금을 납부하는 대신 왕이나 황제로부터 특권을 보장받았다. 상인조합인 '길드'(Gild)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 때 공부하는 사람들도 자유로운 학문 활동 등 권익 보호를 위해 이른바 '공부하는 사람들의 조합'인 '유니버시태트(Universitaet)'를 조직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대학으로 이어져 왔다.
중세 대학은 학문과 신앙에 뿌리를 두고 발전했다. 사회가 분화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했다. 종전처럼 가정과 교회만으로 이 같은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인격을 갖춘 새로운 지도자 양성이 필요했다. 체계적 교육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들이 중세 대학이 오늘날의 대학기관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한 이유이다.
역사상 최초의 대학은 중세 이탈리아 살레르노대학(의학)과 볼로냐대학(법학)으로 12세기에 각각 창설됐다. 하지만 근세 대학의 근원은 신학과 철학을 양대 축으로 발전한 파리대학이다. 파리대학은 노틀담 사원에서 발원했다. 중세 초기 대학에는 일정한 건물이 없었다. 교사들은 그들의 '숙료'(宿寮)나 여관을 빌려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대학은 취사시설이 붙은 숙박소를 외부로부터 기부 받아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학료'(College)의 기원이 됐다. 오늘날 단과대학은 '학료'(College)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대학은 도시의 행정담당자 교황 황제 등을 상대로 거듭된 투쟁 끝에 교수와 학생에 대한 일체의 병역과 세금의 면세 특권을 얻어냈다. 대학관계자의 범죄에 대한 대학 자체 내 재판권, 교수와 학생에 대한 신분보장 및 총(학)장의 선출권 등 자치권, 학위 수여권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특권들은 오늘날 현대 대학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은 파리대학을 본 따 1167년말 개교했다. 캠브리지대학은 1209년 옥스퍼드대학에 불만을 품은 학생과 학자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영국에서 런던대학(1836)을 비롯한 신제대학이 설립됐으며, 대학은 서서히 평민화 됐다.
18∼19세기 민족국가 출현은 서양의 대학 발전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810년 설립된 베를린대학이 대학발전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독일에서 대학은 공동생활 장소인 동시에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곳으로 강조됐다. 베를린대학은 자유를 강조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학자를 양성했다.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1808년 제국대학을 설립, 관리의 등용문 또는 창구 역할을 맡았다.
하버드대학(1636) 등 미국의 초기 대학은 영국의 대학을 벤치마킹했다. 미국 대학들은 19세기 이후부터 학문의 실용성을 강조했다. 이른바 '아이비(IVY)리그’라고 불리는 미국 동부 8개 사립 명문대(예일, 프린스턴, 코넬, 브라운, 컬럼비아, 다트머스, 펜실베니아, 프린스턴)를 포함한 수많은 대학들이 자유로운 분위기하에서 상호 학문적 경쟁을 통해 오늘날 세계를 견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