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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집 관재과장(사진 왼쪽 첫번째 인물)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동료 교직원들과 교내 화단을 찾았다. |
“지난해 봄 대전 유성으로 출장 갔을 때 도로변에 활짝 핀 이팝나무를 보면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어요. 하필이면 그 순간 가난했던 유년시절 많이 먹었던 감자밥 생각이 떠올라 덕성여대에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됐지요”
김 과장은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강릉에서 중․고교를 다녔다. 강원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1983년 공채 시험을 통해 덕성여대에 입사했다. 당시 면접관이었던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사장 및 학․처장들과 ‘한 우물을 파겠노라’했던 약속을 지키며 그동안 덕성여대 문밖을 넘어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종로구 운니동 캠퍼스에서 시작한 덕성여대 생활이 올해로 24년째. 83년 그와 함께 덕성여대에 입학했던 학생들이 4년간의 학사일정을 마치고 대학을 떠났지만 그는 여러 행정부서를 거치면서 여전히 덕성여대 캠퍼스와 함께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야 말로 진정한 덕성 83학번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김 과장은 “지은희 총장이 부임하면서 덕성여대 학생들이 여느 때보다 더욱 밝은 모습으로 공부하고 있다”며 “교수, 직원, 학생, 동문이 서로 힘을 모아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83년부터 도입했다는 수월성교육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며 “평등성이니 수월성이니 책무성이니 자율성이니 하는 것은 상호 보완적 관계이므로 나무만 볼 게 아니라 숲도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검은 칼집 속에 있을 때 빛이 나는 것인 만큼 교육인적자원부는 사립대학에 대하여는 최소한의 규제만 두고, 자율성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을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꼽고 있는 작은 체구의 김 과장의 꿈은 생태학을 가르치는 무보수 교사. 김 과장은 “학교가 좋아 교직원이 됐다”며 “정년퇴직 후 전국의 대안학교를 순회하며 진정한 제자를 만나 함께 좀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본보는 '대학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이라는 큰 틀아래 우수한 교직원이 대학경쟁력을 이끈다는 판단에 따라 <캠퍼스피플>란을 신설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 참여바랍니다. ☎02-2025-6050∼7 news@un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