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특성화지표에 HRD(인적자원개발) 성과를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학부교육’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실제로 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을 실시하는 대학은 아직까지 많지 않다. 많은 대학들이 예산확보와 홍보를 위해 연구 성과 올리기에만 급급하기 때문. 한편으로는 “중앙일보 등에서 실시하는 대학평가에 교육의 질적인 부분을 평가할 잣대가 없어 교육인프라를 아무리 잘 구축해 놓아도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교수들의 입장도 마찬가지. 연구 성과는 연구 성과대로 제출해야 하고 수업은 수업대로 진행해야 하니 교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어렵다는 것이 교수들의 항변이다.
◆학부 교육 강화, 대학이 나선다 = 이런 가운데서 일부 대학들을 중심으로 학부 교육 강화에 나서는 대학들이 나오고 있다. 동국대는 내년까지 교수 책임시수를 12학점까지 감축할 방침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한편 좋은 연구 성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책임시수를 줄이는 대신 이들은 교육에 대한 다면적 평가를 확대 실시한다.
동국대는 지난 1학기 전 교수를 대상으로 강의에 대한 포트폴리오 작성을 요청했다. 강의계획서에서 강의내용, 강의자료, 학생들의 과제물과 성적평가 결과물 등 강의 전반에 대한 내용은 물론 교수 자체 강의평가 등을 자발적으로 제출토록 한 것. 동국대는 포트폴리오를 제출한 모든 교수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앞으로 동국대는 이러한 다면적 평가를 교수 승급 심사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이상일 동국대 교무처장은 “학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전공에 대한 지식 전달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여부”라며 “수업에서 교수의 임의대로 지식을 편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의의 기본 취지와 계획에 따라 진행됐는지를 평가할 필요가 있어 이 같은 평가방식을 도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교육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는 명지대와 한성대도 교원승급심사에 교육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고 있는 대학들이다. 명지대는 교원승급심사에 포함되는 교원업적평가에서 강의전담교수와 연구전담교수로 그룹을 나눠 평가를 좀 더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즉, 강의전담 교수 그룹은 교육평가에 높은 가중치(60%)를 주는 대신 연구평가 가중치(20%)는 낮추고 연구전담 교수 그룹은 교육평가(20%)를 낮추는 대신 연구평가 가중치(60%)를 높였다.
한성대는 최근 들어 교원승급심사 기준에서 교육업적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성대 승진임용기준 개선안을 살펴보면 부교수와 교수 승진 시 교육과 연구업적의 반영비율이 같았던 기존 안에서 교육업적의 비율을 대폭 높여 교육업적을 연구업적보다 많이 반영하게 된다. 연구업적평가에서도 교육 강화 움직임이 반영됐다. 대학교재 저술을 일반 학술저서 저술과 같은 점수로 끌어올린 것.
현재 많은 대학들이 대학교재에 대해서는 다른 저서에 비해 점수를 낮게 책정하거나 그 인정 저서수도 제한을 두고 있어 한성대의 이런 개선안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 점수는 학진 등재 학술지 논문 게재(국내 대학교재)나 SCI급 논문 게재(국제 대학교재)와 점수가 같아 교육의 비중을 연구의 비중과 같이 대폭 늘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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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대학신문 자료사진. |
김희준 서울대 교수는 “연구경험과 교육경험이 모두 풍부해 후진을 양성할 수 있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서도 “우수한 강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교육에 나서는 교수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초과목의 경우 관심 있는 교수들이 집중적으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이런 기초 과목은 기계적으로 돌아가며 강의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교수들이 스스로 원해서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논의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손일락 청주대 교수는 교수들의 관성과 교육학에 대한 지식부족을 학부 교육 강화의 걸림돌로 꼽았다. 그는 “대학이란 학문의 전당에서 수업을 가볍게 진행할 수는 없다는 교수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들이 교육학을 해 본 적이 없어 초·중등학교 교사들에 비해 올바른 교육방법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다”며 “교수들의 수준에 학생들을 맞추려 하다보니 교육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어렵다”고 손 교수는 강조했다.
대학의 경우 교육 강화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로 ‘평가’를 들었다. 연구업적이 높은 점수를 차지하고 교육업적에 대한 평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이상일 동국대 교무처장은 “중앙일보와 같은 외부 평가에서 교육 인프라의 질적 평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아무리 우수한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대학이라도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연구뿐 아니라 ‘숙련된 사회인’으로서의 교육도 대학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다. 모든 대학이 교육보다 연구에 치중해 대학이 가진 고유의 기능인 교육을 등한시 하는 것은 ‘전국 대학의 대형 연구소화’와 다를 것이 없다는 대학계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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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손일락 청주대 교수(호텔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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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교수는 “아무리 좋은 강의라 해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이라며 “수업의 엑기스는 10분에 몰아넣고 나머지는 다 ‘잡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의 흐름을 반영할 줄 알아야 교육적 효과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생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교육의 성과도 높일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수업을 장난처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의시간부터 방식까지 까다롭게 챙기고 있다. 수업을 ‘하나의 연극’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교수와 학생의 역할은 물론 강의시간, 강의실 선정에도 깊게 관여한다. 그는 ‘완벽한 강의’를 위해서 학생들이 졸기 쉬운 식사 직후의 강의시간은 항상 피한다고 밝혔다. 또 매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면 학생들이 식상할 우려가 있어 매 수업마다 다른 넥타이를 맬 정도다.
그가 에티켓이나 대인관계에 대한 강의로 교양과목을 진행하게 된 것은 교양과목은 교양과목 답게 시대흐름을 반영한, 학생들이 이 시대에 필요로 하는 과목이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손일락 교수는 “요즘 시대에 소비자는 기업의 신이지만 수업에 있어서의 신은 바로 학생”이라며 “신과도 같은 학생에 강의를 맞추지 않고서는 교육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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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희준 서울대 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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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교수는 특히 개론 수업에 많은 힘을 기울인다. 김 교수는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이 올라와 화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의 강의법은 ‘소크라테스’식 교육법. 토론식 수업과 문답식 수업을 적절히 활용해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 스스로 실마리를 풀어나가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그는 일단 과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는데 큰 힘을 쏟는다. 그래서 단순히 교재를 이해하는 강의식 수업보다는 정보를 수집하고 생각을 정리해 과학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택한다. 교재는 책 뿐 아니다. 만화나 퍼즐, 심지어는 ‘님의 침묵’과 같은 명시조차 그에게는 교재가 된다.
김희준 교수는 “대학에 들어와 심화된 과정도 얼마든지 흥미를 가지고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수업의 목표”라고 말했다.
중·고교 특강은 물론 교과서 저술 등 대학 외 교육활동에도 힘쓰고 있는 김 교수는 “많은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학부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며 앞으로도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