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울지역 모 대학 총장은 학장단을 비롯한 보직교수들에게 이 메일을 보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세계 100대 대학’순위에 한국의 대학이 한군데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사실을 적시하며, 분발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낸 것이다.
비단 이 대학만이 아니다. 경쟁대학이 스타급 교수들을 영입하면, 당장 다음해 각종 교수연구 평가에서 격차가 벌어진다. 각 대학이 연구능력이 뛰어난 교수들을 모셔 오는데 경쟁을 벌이고, 특급연구비와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지원시스템을 강화하는 것도 연구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총장보다 연봉을 많이 받거나, 논문 실적만으로 한해 몇 천만원의 연구비를 더 받는 스타급 교수가 등장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연구력 급증, “이유가 있었네”
“지난 4년간 4백여명의 교수를 채용하고 인프라를 구축, 신명나게 연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최근 순위 상승으로 나타난 거죠.”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7월 분석·발표한 국내 대학의 2005년 SCI 논문에서 전년대비 무려 71%가 늘어난 성장세를 보인 정선호 건국대 연구처장·산학협력단장의 설명이다.
건국대는 SCI급 학술지와 학술진흥재단 등재지 논문 발표시 학술지원 격려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격려금은 최고 2천만원까지 지급되는데, 연봉의 20%를 받은 교수도 있다. 지난해 5백만원 이상을 격려금으로 받은 교수가 45명으로, 상위 20%의 교수가 전체 지급 총액의 80%를 가져갔다.
교수별 논문 실적과 간접비 기여도를 수치화해 연구조교를 배정하는 ‘연구 마일리지제도’도 운영한다. 국제 특허 출원때는 학교 측이 비용을 60% 대고, 기술이전시 80% 이상을 교수에게 인센티브로 주고 있다.
정선호 처장은 “BK21 중간평가에서 새로 진입할 수 있도록, 가칭 ‘건국BK사업단’을 꾸려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DNA의 새로운 구조를 밝혀 네이처지 표지를 장식한 성균관대 김경규 교수는 이 논문으로 특별게재료 3천만원을 받았다. 성균관대가 네이처나 사이언스, 셀 등 최고 권위지에 논문을 발표한 교수에게 편당 3천만원을 주는 특A급 게재료를 받은 첫 주인공이 된 것.
이 대학은 SCI급 논문 발표 실적이 평균을 상회하면, ‘더불인센티브’를 주는데, 지난해 3억원의 인센티브가 지급됐다.
특히 연간 20억원 규모의 재원으로 신임 교수에게 초기 정착 연구비와 실험실습기자재를 지원해 주는 ‘스타트-업 펀드’를 운영, 스카우트 대상자를 물색하고 있으며, 우수교원을 매년 4명 선발해 특별연구비 3천만원을 주는 ‘SKKU-펠로우십’ 제도를 두고 있다.
대학원생도 편당 30만원을 지원하고 있는데, 지난해 3백명이 넘는 학생이 수혜를 받았다.
이달 초에는 ‘연구정보자료실’을 오픈, 노하우 전파에 나섰다. 20평 남짓의 공간에 교수들이 각종 사업에서 제출했던 연구과제 신청서를 한데 모은 이 곳은 빔 프로젝트 등 프레젠테이션 장비와 휴게 시설을 갖춰, 교수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꾸몄다.
고려대는 지난해부터 ‘SCI급 논문게재 장려 지원사업’을 실시, 8억원의 장려금을 지급했다. 이 사업은 논문 1편당 1백만원을 지원하고, 발표 논문 수에 따라 누진 인센티브를 준다. 누진 인센티브가 2천만원까지 지급되기도 했다.
또 국가 R&D 수행중 지원기관의 사정으로 연구비 입금이 지연됐을때, 연구비를 선급 지원하는 제도를 부활시켜 운영하고 있다. 2005년 고려대의 SCI 논문은 전년대비 467편이 늘어난 총 1,441편. 교수 1인당 논문 수는 2.02편으로, 연세대를 근소하게 앞섰다.
박영인 고려대 전 산학렵력단장은 “지속적으로 교수를 채용하고, 연구진작책을 시행한 것이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전체 논문 편수는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라
“제 연구소 연구원들에게 논문을 내지 않으면 죽은 걸로 간주하겠다고 선포하고, 한해동안 5편 이상씩 내자고 독려했죠. 지난해 80여편의 논문이 나왔습니다. 논문은 자꾸 쓰다보면, 좋은 게 나오고, 양이 늘어나면 자연 질이 높아집니다. 정량적 지표에서 20위권에 들면, 질적으로도 올라간다고 봅니다.”(박진배 연세대 연구처장·산학협력단장)
총 2,025편의 논문을 게재, 서울대에 이어 2위(세계 104위)를 기록하며, 100위권 입성을 앞둔 연세대는 올 1학기부터 국제학술지 게재예정 논문의 원문교정을 전문교열업체에 맡기고 있다. 이를 위해 3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는데, 9월 현재 58명의 교수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한 상태.
기술이전 촉진을 위해 최근 전담직원 1명을 뽑은데 이어 변리사 등 전문인력 채용을 진행 중이다. 박진배 처장은 “연구과제가 많으면 기술이전 자료가 많아진다”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다각도로 지원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포스텍은 올해 ‘중점연구분야 지원사업’을 마련, 14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생명공학과 정보나노소재 그룹, 중점그룹(개인) 등 44명에게 12억2천만원을 지급했다. 이 들 교수는 단계별 평가에서 탈락하지 않는 한 5년까지 연구비를 받게 된다.
학제간 연구 활성화를 위해 처음 도입된 ‘겸임교수제도’도 눈에 띈다. 이 제도는 화학과 교수가 생명과학과 교수를 겸임하는 식으로 운영되는데, 올해 4명을 임용한 포스텍은 매년 인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최학순 대학발전추진팀장은 “겸임교수는 양쪽 학과에서 똑같이 평가를 받게 된다”면서 “미국 칼텍의 경우 교수 정원은 280명 정도지만 학과별로 500명이 지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스텍은 아울러 내년 2월까지 연구·교육·행정 등 대학 전체의 프로세스를 혁신 ERP에 장착시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양대는 이번 학기에 신진교수 16명에게 정착연구비를 100% 증액해 인문·사회·예체능 등은 1과제당 1천만원을, 공학·의학·자연계열은 2천만원을 지급했다.
이해원 학술연구처장·산학협력단장은 “연구논문과 산학협력 실적이 우수한 MVP 교수를 뽑아 시상하는 프로그램을 이번 가을에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학협력, 모델을 창출하라
노벨상 수상자 5명을 배출한 일본의 세계적 과학기술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RIKEN)’ 아시아 분소를 지난 5월 유치한 한양대는 지상 7층, 지하 2층 규모의 ‘융합기술관’을 2007년 12월 완공할 예정이다.
리켄을 중심으로 NT 기반의 BT·IT 분야의 원천기술을 확보해 한국과 일본, 중국을 잇는 ‘아시아연구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 베트남, 인도 등의 연구센터 유치 작업도 진행중이다.
이해원 처장은 “산학협력을 위한 국내·외 공동연구, 기술이전 등 인프라구축이 중요하다”며 “선진기법의 통합·협력 연구를 통해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대학의 연구력을 산업화하려는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각 대학의 산학협력단은 조직 개편을 통해 ‘산학기획팀’, ‘산학사업팀’ 등을 신설·보강하고 있는 추세. 각종 평가에서 특허나 기술이전 등 산학협력 지표가 강조되는 현실도 대학의 기술이전 실적 쌓기를 재촉하고 있다.
정일섭 성균관대 산학협력단장은 “이제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천특허를 확보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며 “원천 특허를 유도하기 위한 연구실 역량 분석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고려대는 교수들의 자문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성균관대는 내년부터 교수가 기업 애로기술 발굴차 현장을 방문할 경우 ‘현장지도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다.
정부 투자 없이, 100대 대학은 없다
정일섭 단장은 “실질적인 산학협력이 되려면 대학과 산업체의 눈높이가 맞아야 한다”며 “‘기브 앤 테이크(주고 받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구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해원 단장은 “공적자금에는 수십조를 쓰면서 대학 지원 예산은 몇 조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인 전 단장은 “학생 1인당 교육투자 비용이 얼마냐에 따라 세계 100대 대학 진입 여부가 결정된다”며 “사학의 비중이 절대적인 우리 현실에서는 정부 차원의 교육 투자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박진배 처장은 “현행 10~15% 수준인 대학의 간접경비를 30% 수준으로 상향 조절해야 한다”며 “정부 대부분의 연구비 사업이 대응자금을 요구하고 있는데, 대응자금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