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공계 학문은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치부돼 왔다. 과학에 있어서 연구능력이나 탐구심은 강조돼 왔지만 인문학적인 소양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왔던 것. 최근 들어 작문 수업이 이공계 과정에 추가되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관심이 일기 훨씬 전인 지난 1997년부터 자신의 수업에서 작문과제 제출을 요구해왔던 공학 교수가 있다. 이광근 서울대 교수(컴퓨터공학)가 바로 그 주인공.
수업을 들어본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이 “보통 문제만 풀기 일쑤인 프로그래밍 언어 수업에서 10장짜리 작문과제를 받아서 처음엔 당혹스러웠다”거나 “글이 문제가 있으면 다시 제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전공과 관련된 글을 읽고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쓰도록 하는 일반적인 리포트 과제지만 작문 수업도, 인문계 수업도 아닌 이공계 수업에서 제대로 되지 않은 작문과제를 돌려보내는 교수는 그리 흔치 않다.
이 교수는 수업시간에 작문을 강조하는 이유를 묻자 당연하다는 듯 “과학은 곧 커뮤니케이션(Science is communication)”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뗐다. 과학의 기본정신은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려는 커뮤니케이션의 그것과 상통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아무리 연구 성과가 뛰어나다 해도 사람들에게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그의 과제에 투덜거리는 학생도 있다. 그는 “서울대 간판이 다가 아니다”라면서 “세계적인 공학자로 성장하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필수적”이라고 학생들에게 설명한다고 밝혔다.
또 이광근 교수는 글쓰기에 있어 ‘두괄식’을 특히 강조한다. ‘기술적 커뮤니케이션’은 무엇보다 정확하게 표현되어야 할 뿐 아니라 풀고 싶은 문제를 객관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론부터 명확히 제시해 풀어나갈 수 있는 ‘두괄식’이 가장 이공계를 위한 글쓰기에 적합하다는 것.
그는 10여 년간 학생들의 작문 과제를 읽으면서 두 가지의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하나는 작문 과제를 하면서 시간에 쫓기다 보니 정리해서 표현을 잘 못한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읽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그래서 앞으로의 이공계 글쓰기 교육의 방향성과 관련, “초안을 작성해서 정리하는 기술의 훈련과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다시 읽을 수 있는 훈련이 이공계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커뮤니케이션에 취약하면 공학자로서의 능력도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앉아서 문제만 풀기 바쁘다면 절름발이가 될 뿐이죠. 훌륭한 공학자를 만드는 데 있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은 40%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이 풀어낸 과제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릴까 하는 커뮤니케이션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공계 학생들에게 효과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교육은 필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