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이 흘렀다. 대학도 크게 변했다. 구멍가게가 대기업으로 바뀌었듯이 많은 대학이 글로벌 규모로 바뀌었다. 양적 팽창은 기하급수적이었다. 2년제, 4년제를 포함 300개에 이르는 대학이 경향 각지에 생겨났다. 정원이 반도 차지 않는 대학이 부지기수다.
연구해야 할 교수들이 ‘학생 모집책’이 되어 이웃 고등학교를 찾아다닌다. 심지어 어떤 학교는 두당 30만원씩 성과급을 주고 있다고도 한다. 시골 작은 도시에도 4년제 대학이 있으니 시설과 돈, 시간의 낭비가 천문학적이다.
학교마다 전문대학원과 특수 대학원이 무슨 훈장인양 설치되면서 면죄부 팔듯 ‘학위장사’에 혈안이다. 어슷비슷한 대학원이 학교마다 있으니 주변부 대학은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고 있다. 일부 대학 빼고는 거의 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게 대학원이다. 여기에다 무슨 사이버다, 디지털 학위가 자꾸 늘어나고 있으니 부실한 학사관리, 저하되는 학력을 막을 길이 없게 됐다. 그래도 옛 대학시절에는 학점이 안 나와서 졸업 못하는 자들이 꽤 있었는데, 지금은 입학만 하면 자동으로 졸업이다. 캠퍼스의 온정주의가 젊은이들에게 편법으로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의 우리 대학은 반민주적이요, 비교육적이요, 반지성적이다. 교수들은 ‘감투’에 눈독을 들인다. 밤새워 연구해야 할 교수들은 학장, 처장, 원장 등 보직을 탐하고 일부 교수들은 캠퍼스 밖에서 자기 이론을 실험하고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총장선거를 보면 가관이다. 직선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나 대학은 회사나 사교클럽과는 다르다. 철학교수가 의과대학교수를 어떻게 평가하고, 지질학교수가 신방과 교수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흔히 전화 많이 걸고 경조사 잘 챙기고 ‘정치적’야욕을 가진 자가 총장이 되고 있다.
도서관에는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으나 대개는 고시 수험생 아니면 취업준비생들로 가득하다. 대학이 거대한 고시학원으로 전락한지는 이미 오래 됐다. 이뿐인가. 역설적이지만 ‘이공계 살리기’가 대학을 죽이고 있다. 기술은 중요하다. 기술입국, 국민 모두 1인1기를 갖자는 취지도 좋다. 그러나 과학의 겉만 보지 말고 과학의 속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문사철(文史哲)이 살아야 대학이 산다. 정신이 없는 기술과학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황우석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의 핵심은 「윤리」이고 「인간애」다. 나는 늘 주장한다. 인간의 달 탐험은 이태백의 달 노래에서 시작됐다고. 윤극영의 「반달」을 노래하면서 우리 어린이들은 천문연구를 시작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대학은 해병대다. 한번 교수면 영원한 교수다. 철밥통을 차고앉아서 무슨 경쟁력이 생기겠는가. 게다가 학문적 ‘동종교배’는 우생학 하고는 거리가 멀다. 학문의 미국화, 종속화도 심각하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지식의 거간꾼 또는 미국이론의 복덕방 노릇을 하고 있다.
교수평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방법은 문제다. 신문에 글 쓰면 몇 점, 돈 많이 끌어오면 몇 점... 또 연구비 몇 푼 받으면 엉터리로 정산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대사상가, 대철학자, 대학자가 나오겠는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대학이 소인배 집합소처럼 되어가고 있다.